1765년 6월 21일, 金樂行이 복제 중의 사돈 이생원에게 자신과 가족의 안부를 전하고, 며느리에게는 아직 분만할 기미가 없지만, 분만한 후에는 즉시 소식을 전할 것임을 알리기 위하여 보낸 편지
1765년 6월 21일, 金樂行이 복제 중의 사돈 이생원에게 자신과 가족의 안부를 전하고, 며느리에게는 아직 분만할 기미가 없지만, 분만한 후에는 즉시 소식을 전할 것임을 알리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먼저 서원의 종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중 뜻밖에 상대의 심부름꾼이 먼저 도착하여 편지를 받으니 놀랍고 고맙기 그지없다 하고, 찌는 듯이 더운 날씨에 잘 지낸다는 것을 알게 되니 마음에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자신은 여독이 아직 남아 있으나 병이 날 정도는 아니라 하고 며느리는 아직까지 산기가 없는데 더위 중에 점점 수척해지고 있어 안타까운 심경이며 손자는 계속 차도가 있지만 얼굴빛이 마르고 황달기운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자신의 집은 올해에야 비로소 농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두 명의 머슴이 김매기에 시달리느라 하루도 쉴 날이 없다 하고, 상대에 대해서는 부리는 사람이 매우 많으나 자신보다 김매야 할 전지가 10배나 되니 수삼십 리의 먼 곳에 일부러 사람을 보내기가 쉽지 않을 터인데 이렇게 심부름꾼이 오니 실로 기대 밖의 일이라 감사하였다. 그리고 泗濱書院으로 가는 인편이 계속 있으니, 며느리가 분만을 하게 되면 즉시 알리겠다고 하며 말을 맺었다.
내용에서 언급한 사빈서원은 靑溪 金璡 6父子를 제향하는 서원이다. 원래 安東의 臨河 泗水 가에 있었으나 지금은 임하댐 건설로 자리를 옮겨 안동시 임하면 川前里에 소재하고 있다.
발신자 金樂行(1708∼1766)은 본관은 義城, 자는 艮夫, 호는 九思堂이다. 초명은 晋行이고 초자는 退甫이며, 아버지는 金聖鐸이다. 密庵 李裁의 문인으로 1735년(영조 11) 향시에 입격하였다. 1737년(영조 13)에 아버지가 스승 葛庵 李玄逸의 무고를 신원하였다가 제주도에 유배되자 배소에 따라가 학문을 강론하였다.
수신인 李生員은 자신의 며느리의 아버지, 곧 사돈이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