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7일에 柳徽文이 마뜰[午坪]의 처가에 가있던 아들 柳致喬에게 거기에 있는 동안 『書經』을 충분히 읽어서 돌아온 후 背誦할 것에 대비하라고 하고, 다음 달 17일에 아내를 데리고 올 것을 지시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8월 27일에 柳徽文이 마뜰[午坪]의 처가에 가있던 아들 柳致喬에게 거기에 있는 동안 『書經』을 충분히 읽어서 돌아온 후 背誦할 것에 대비하라고 하고, 다음 달 17일에 아내를 데리고 올 것을 지시하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먼저 일간 침식은 좋은지 묻고 자신은 여전하다고 하며, 상대의 형이 돌아오는 편에 도백이 내달 10일로 정해져서 상대가 머물러 있다가 응시하고 돌아오려 한다고 들었다 하고, 그 계획이 긴급한 것이 아니니 속히 돌아오는 것이 좋겠다는 자신의 생각을 전하였다. 만약 그대로 머물려 한다면 『書經』을 처음부터 끝까지 뜻을 새기며 외어 돌아온 후 배송함으로써 큰 꾸지람을 면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돌아올 때는 『左氏春秋』를 잊지 말고 빌려오라고 하였다.
며느리가 돌아올 날짜는 지난번에 상대로 하여금 9월 17일과 29일 및 10월 6일 중에서 택하도록 전하게 하였는데, 잊어버리지 않았느냐고 묻고, 그러나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추수도 갑자기 끝내기가 어려우니 내달 17일에 상대가 데리고 오는 것이 편리하고 좋겠다고 하며 이 뜻을 장인에게 여쭈고 다시 알려주도록 지시하였다. 인편이 바빠서 장인과 며느리에게는 따로 안부를 묻지 못한다고 하였다.
발신인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수신인 류치교(1790~1862)는 자가 叔久, 호는 守齋이다. 류휘문의 長子이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