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〇년 9월 27일에 柳徽文이 아들 柳致喬에게 『春秋』는 『胡氏傳』과 『左傳』을 빌려와서 발췌하여 읽은 후, 이어서 『史記』를 보도록 권하고, 군사들의 習操를 보려고 하지 말고 이달 그믐이나 내달 초에 즉시 돌아오라고 지시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정〇년 9월 27일에 柳徽文이 아들 柳致喬에게 『春秋』는 『胡氏傳』과 『左傳』을 빌려와서 발췌하여 읽은 후, 이어서 『史記』를 보도록 권하고, 군사들의 習操를 보려고 하지 말고 이달 그믐이나 내달 초에 즉시 돌아오라고 지시하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먼저 상대가 떠난 후 한 달이 되는데 계속 잘 지내는지 묻고 자신은 예전처럼 지낸다 한 후, 상대가 이전처럼 함부로 시간을 허비하면서 두려움 없이 지내면 돌아온 후 꾸지람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 경계하였다. 그리고 두 해나 『尙書』를 읽었는데도 송독만 할 뿐 자별한 의미를 모른다면 읽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라 하고, 春秋傳은 『胡氏傳』을 빌려서 읽으라 하면서 한 번 春秋筆法에 대하여 이해한 후에 다른 책을 읽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만약 간행된 『左傳』이 있으면 함께 빌려와 자신에게 있는 抄選이나 批評과 대조하여 골라 읽고, 이어서 『史記』를 읽는다면 옛 사람들의 문장 비결을 대략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상대가 이번 習操를 보려고 하지만 部伍와 奇正을 전혀 모르니 보더라도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며 다른 생각하지 말고 이달 그믐이나 내달 초하루에 즉시 돌아오라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星巖의 李景▣이 곧 오려고 하는데, 亭子의 수리는 상대가 돌아온 후에 할 것이라고 하였다.
발신인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수신인 류치교(1790~1862)는 자가 叔久, 호는 守齋이다. 류휘문의 長子이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