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萬植이 柳璋植에게 닭실의 穉三 兄이 한 번 초청하겠다고 한 말을 전하고, 好古窩의 時祀 때 가서 뵙겠다는 연락을 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柳萬植이 柳璋植에게 닭실의 穉三 兄이 한 번 초청하겠다고 한 말을 전하고, 好古窩의 時祀 때 가서 뵙겠다는 연락을 하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먼저 요즈음 만나지도 못하고 편지 내왕도 없어 비루한 마음이 싹터 노경이 더욱 쓸쓸하다고 서두를 뗀 뒤, 이때에도 고요히 지내시는 체후가 건강하며 아들들도 잘 지내는지 물었다. 이어서 채마밭을 새로 일구고 앞들의 농사가 풍년이 들어 한 해의 가계가 펴게 되었으니 覽揆의 잔치가 기다려진다고 하였다.
자신에 대해서는, 녹록하게 지내는 모양이 여전한데, 며칠 전 榮州와 奉化를 갔다 오면서 酉海[닭실과 해저] 사람과 나눈 이야기가 많았다 하였다. 또 穉三 형이 다음 달 15일이나 20일 경에 이쪽 사람들을 초대한다고 하는데, 꼭 그렇게 되리라 기대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 이 일이 매번 이렇게 지체되니 안타깝고 답답하다고 하였다. 또 일간에 어떤 볼 일이 있어서 桂谷에 와 있는데, 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시장의 모리배와 같으니 가소롭다고 자탄하고, 이제 장차 돌아가려고 하는데 갈 때에 才峽으로 가서 성묘하고 돌아갈 계획이라 하였다. 마지막으로 숲당[林塘]의 장사 날이 다음 달 4일인데, 마땅히 가서 곡해야 할 것이니, 그 길에 한 번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미리 생각한다고 하였다.
편지 내용에 보이는 穉三은 닭실에 살았던 權相圭(1874~1961)의 자로 致三이라고도 한다. 호는 蔡山 또는 忍菴이다.
추신에서 滴巖 秋享을 24일에 지내기로 하였다니 가서 뵙겠다고 하였는데, 적암 추향은 호고와 류휘문의 時祀를 말한다. 호고와 산소가 金滴巖에 있어서 지칭한 이름이다.
발신자 柳萬植(1881~1955)은 본관은 全州, 자는 一初, 호는 醒吾이다. 아버지는 柳必永이며 柳寅植의 생가 아우이기도 하다.
수신인 柳璋植(1875~1950)은 자는 圭範, 호는 可林 또는 癡廬이다. 好古窩 柳徽文의 현손이다. 西坡 柳必永에게 수학하고, 1911년에 고조부 호고와의 저술 『滄浪答問』, 『小學後篇編』, 『濂洛補遺』, 『皇明續綱目』등을 교정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