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定秀가 황산사에서 東巖 柳長源의 『常變通攷』 간행을 주관하고 있던 柳徽文 등에게 자신의 三從叔 伯幹 씨의 초상을 알리기 위하여 보낸 편지
李定秀가 황산사에서 東巖 柳長源의 『常變通攷』 간행을 주관하고 있던 柳徽文 등에게 자신의 三從叔 伯幹 씨의 초상을 알리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먼저 仙庵의 소식이 가을 기운과 함께 도착하여 바삐 읽고서 정양하는 체후가 더욱 건강하며 간행일을 주간하는 여러분들도 차례로 평안하심을 알게 되니 매우 위로가 된다 하고, 자신은 그 사이에 삼종숙인 백간 씨의 상을 당하였는데, 집안에서 평소에 의지하던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되니 노경의 어쩔 줄을 모르는 심경을 전하였다.
피봉의 수신처를 ‘黃山刊所’라고 한 것으로 보아, 선암은 東巖 柳長源의 『常變通攷』를 교정하고 간행하였던 황산사를 가리키는데, 이때에 柳徽文, 柳健休,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들이 이 일을 진행하는 중이었던 듯하다. 삼종숙 백간 씨는 李宗甲을 가리킨다. 伯幹은 자이다.
편지 말미에 일자를 쓰지 않고 ‘卽旋’이라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상대편에서 오는 인편이 돌아갈 때 곧바로 회답하여 보낸다는 뜻이다.
발신인 李定秀(1772~1845)는 본관은 固城, 자는 聖立, 호는 淨友軒이다. 아버지는 北亭 李宗周이다. 안동 법흥의 塔洞에 살았다. 川沙 金宗德의 집안에 장가든 인연으로 천사 선생에게 왕래하며 수업하였다.
이 서간의 뒷면에 있는 것은 柳徽文이 쓴 초고로서 이 간찰과는 별개의 내용인데 다음과 같다. 1830년 11월, 柳徽文이 申景學에게 정양 중에 술을 끊고 밥을 먹으면서 조섭하기를 권유하기 위하여 보낸 간찰이다.
먼저 헤어진 지 열흘인데 서운한 마음이 생긴다 하고, 지금 양의 기운이 싹트는 때가 된 것처럼 촌내의 병 기운은 깨끗이 걷히었는지 묻고, 가만히 보니 요사이 밥을 덜 먹고 술을 마시는데, 이는 섭생에 크게 좋은 방도가 아니라고 하고, 지금부터 절주하고 밥을 더 먹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시일이 오래 되어 바로 지금 낮이 점점 길어지는 것처럼 한다면 그 병구완의 효력이 음식에서 구하는 것일 뿐만이 아닐 것이라 하였다.
자신과 같은 사람이 병을 무릅쓰고 한 번 간 것은 고인의 폐관에 대한 경계를 직접 범한 것이므로 스스로 외람된 짓을 한 것을 자책해야겠지만 그 말에는 채택할 것이 있을 것이니 소홀히 듣지 말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발신인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