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 ○월 26일에 柳炳文이 소호리에서 맛골[午洞]의 우거로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우 柳徽文에게 姜使君이 보내준 음식을 함께 먹을 겸 집으로 와서 고적한 마음을 위로하라고 부르기 위하여 보낸 편지
○○년 ○월 26일에 柳炳文이 소호리에서 맛골[午洞]의 우거로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우 柳徽文에게 姜使君이 보내준 음식을 함께 먹을 겸 집으로 와서 고적한 마음을 위로하라고 부르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府內의 집에서 蘇湖里로 갔다고 하니 좋은 벗과 좋은 글로 여러 날을 보내더라도 헛걸음을 아닐 것임을 알았으나 돌아오기가 쉽지 않을 것을 걱정했었다고 하고, 마침 여종이 편지를 가지고 도착하였는데, 그 편으로 우소로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으며 식구들의 근황도 여전하다는 것을 알게 되니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俛庵集』 몇 책을 교감하고서 평소의 정밀한 조예를 엿볼 수 있었으니 다행이라 하고, 자신은 눈병이 차도가 없어 독서를 폐하고 바보처럼 앉아지내니 고적함을 견디기 어렵다고 하였다. 그저께는 趙仲德이 들렀기에 그쪽의 집안사람들이 평안하다는 소식을 듣고 오래 만나지 못하였던 정회를 풀 수 있었으나 그가 상대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더라고 하였다. 또 면내의 일은 매우 괴이하고, 향중의 일은 결말이 쉽게 나지 않을 것이니 매우 분통한 일이라 하였다. 마지막으로 姜使君이 보내준 기정 음식을 궤 안에 넣어 두었는데, 한 마리를 조중덕에게 대접하고도 두 마리가 남았으니, 어서 와서 함께 먹으며 오래 못 본 회포도 풀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내용에 보이는 『면암집』은 李㙖(1739~1810)의 문집으로 이때에 소호리의 이병운, 이병원 형제의 주도로 교감이 진행되었던 듯하며, 趙仲德은 趙秉常(1804~1862)이니, 중덕은 그의 자이다. 본관은 漢陽이며 영양 주실[周谷] 사람으로 류치명의 문인이다.
발신인 류병문(1766~1826)은 본관은 全州, 자는 仲虎, 호는 素隱이다. 아버지는 萬休이다. 柳長源의 문인으로 학문에 전념하여 후진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저서로 문집 『素隱集』과 『完山世牒』이 전한다.
수신인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全州柳氏大同譜』,
『好古窩集』,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