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 7월 22일에 柳炳文이 아우 柳徽文에게 자신의 피병 계획을 알리고 전염병 기운이 깨끗이 걷힐 때까지 살림을 정리하여 삼현에 들어와 살기를 권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년 7월 22일에 류병문이 아우 류휘문에게 자신의 피병 계획을 알리고 전염병 기운이 깨끗이 걷힐 때까지 살림을 정리하여 삼현에 들어와 살기를 권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이다.
먼저 어지러이 헤어져 사느라 그리워하는 고통을 말로 다할 수 없던 중 뜻밖에 여종 丹이 온 편에 식구를 나누어 이사한 근황을 자세히 알고 나니 답답하던 마음이 조금 풀린다하고, 星巖의 일은 너무나 참혹하여 오랠수록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다며, 경계가 없으면 탄식이 길다고 한 詩人의 말이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라 하였다.
이어서 三峴과 耆里는 모두 청결하여 조심하면 다른 걱정을 없을 것이라 하고, 고향은 객지나 마찬가지일 터인데 침식은 어떠하며 문중 지친들은 또한 어떠한지 물었다. 자신은 한 달 너머 병으로 앓다가 근래에 겨우 기동하고 있으나, 전염병 때문에 며느리가 생사를 헤매고 있을 때 가서 영결하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이 된다고 하였다. 맛재[午峴]는 촌내에서 100여명이 죽고 사방으로 피병을 가서 인가에 연기가 끊겼다 하고, 遜谷에서는 장정이 된 족인 형제가 모두 죽었는데, 그 아버지의 형편이 참혹하다 하였다. 또 산 밖의 소식을 전혀 들을 길이 없는 산중의 두려운 상황이 조석을 보전하지 못할 듯하다며, 병 기운이 만약 바로 곁 이웃까지 침범해 오면 뒷 산등을 타고 福受川 齋舍로 가서 잠시 피병할 계획이라 하였다.
발신인 류병문(1766~1826)은 본관은 全州, 자는 仲虎, 호는 素隱이다.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柳長源의 문인으로 학문에 전념하여 후진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저서로 문집 『素隱集』과 『完山世牒』이 전한다.
수신인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全州柳氏大同譜』,
『好古窩集』,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