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년 9월 6일, 류병문이 아우인 류휘문에게 병을 앓는 가족들의 근황을 전하고 산사에 생긴 차질의 해결 경과를 전하기 위하여 보낸 편지
○○년 9월 6일, 류병문이 아우인 류휘문에게 병을 앓는 가족들의 근황을 전하고 산사에 생긴 차질의 해결 경과를 전하기 위하여 보낸 서간이다.
먼저 뗏목을 타고 훌쩍 떠난 후 나루 끝을 바라보며 서운한 마음 간절하였다 하고 水垈의 비석을 세울 때 축문을 상의하여 일을 돕고 조금 전에 象文 형과 우거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가족들이 모두 탈이 없다는 것은 알았으나 다시 아득한 심정이라 하였다. 자신은 치통과 눈병이 가을 들어 더 고통스럽고 큰며느리는 구토와 설사가 차도가 없어 답답하다고 하였다.
또 산사는 차질이 생겨서 아이들이 虎洞의 상주인 李氏의 집으로 가서 간청한 결과 오는 8일에 결정을 내리기로 하였는데 속임을 당할까 걱정스럽지만, 整地 작업은 일단 멈추었다고 하였다.
중수씨는 지금 霞洞에 있는데 風癬 증세로 매우 고통스러워하고 있고 魯鎭 또한 반점이 돋아 있는 상태로 이것이 작은 근심이 아님을 처음 알았다 하고 집을 팔 때 엄중하게 방비하지 않은 까닭일 것이니 모든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새삼 알겠다고 하였다. 아이들이 바쁜 일에 골몰하여 밤이 저절로 다 떨어져 가는데 아무도 수습할 사람이 없다 하고 致喬가 빨리 돌아와 감독할 것을 독촉하였다. 마침 菊瀾으로 가는 金兄 편에 잠시 쓴다고 하며 말을 맺었다.
추신으로 그 때 재목을 운반하였던 종은 밤 3경에 돌아왔는데, 술값 1전 8문을 下岐村 每丁의 집에 빚졌다는 것을 알렸다.
편지 중에 언급한 치교는 류휘문의 장자 류치교(1790~1862)이다. 자는 叔久, 호는 守齋이다.
발신인 류병문(1776~1826)은 본관은 全州, 자는 仲虎, 호는 素隱이다. 아버지는 萬休이다. 柳長源의 문인으로 학문에 전념하여 후진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저서로 문집 『소은집』과 『완산세첩』이 전한다.
수신인 류휘문(1773-1832)은 본관은 全州, 자는 公晦, 호는 好古窩이다. 할아버지는 柳正源, 아버지는 柳萬休이다. 9세에 仲父 柳明休에게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여 柳長源, 南漢朝, 鄭宗魯에게 수학하였다. 할아버지 류정원의 유작 『三山集』과 『易解參攷』를 교정하고, 스승 류장원의 저술인 『常變通攷』를 柳健休, 柳鼎文, 柳致明 등 문중의 학자와 10여 년에 걸쳐 교정한 끝에 58세 때 黃山寺에서 간행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