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0년에 李奴 奉元이 토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해준 매매명문
1880년(고종 17)에 李奴 奉元이 토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해준 매매명문이다. 이 문서는 성산이씨 홍와고택에 소장되어 있던 120여건의 매매명문 가운데 하나이다. 문서 하단이 결락되어 있어서 거래하는 토지의 자호 및 면적 일부를 확인할 수 없다. 문서의 수취자를 표기하는 부분이 비어 있다. 이는 본 문서를 소지하고 있는 자가 곧 거래목적물을 매입한 사람임을 의미하며, 주로 19세기 이후 매매명문에 종종 나타나는 현상이다.
奉元은 매도 사유를 ‘빚을 갚으려는 이유로’라고 적고 있다. 거래목적물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다음과 같다.
-소유경위 : 전래받은 것
-위치 : 乃谷員 鄭基坪
-목적물 : ▣…▣字 17번 1負, 桓자 105번 2負 1束, 66번 4부▣…▣, ▣…▣1부 6속, 公字 14번 1부 1속, 16번 3부 7속▣…▣, ▣…▣11번 4속, 9번 16부 가운데 2부 6속, ▣…▣
-가격 : 동전 300냥.
‘負’, ‘束’은 조선시대 양전법에 의거한 토지면적 측정 단위이다. 여기서는 負數를 적은 부분을 비워두었다. 경국대전 호전 양전조를 보면, 量田尺 1제곱척[實積一尺]을 1把라고 칭했고, 10把를 1束, 10束을 1負, 100負를 1結로 면적 단위를 정했다. 또한 토지의 비옥도에 따른 田分 6개 등급에 따라 길이를 재는 尺의 종류가 달랐는데, 1등척이 가장 짧았고, 6등척이 가장 길었다. 조선후기에는 1등척으로만 면적을 측량하되, 전분에 따라 일정한 비율을 곱해서 결부수를 정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거래당사자 이외에 증인으로 申奴 德三이 문서작성에 참여하고 있다. 本文記는 토지를 파는 사람이 거래 목적물이 본인 소유였음을 증명하는 역할을 하는 문서인데, 주로 이전에 토지를 취득할 때 받은 매매명문이나 분재기 등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본문기를 넘기는지의 여부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朝鮮時代 明文에 관한 文書學的 硏究, 김성갑,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4
1차 작성자 : 유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