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6년(영조 22) 11월 26일 李斗應乞伊가 包諧員에 있는 자신의 밭 5되지기를 동전 1냥 값에 朴太古에게 토지를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
1746년(영조 22) 11월 26일, 李斗應乞伊가 包諧員에 있는 자신의 밭 5되지기를 동전 1냥 값에 朴太古에게 토지를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이 문서는 安東權氏 春雨齋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던 명문 중 하나로 1746년(영조 22) 11월 26일에 작성되었다. 본문에는 乾隆10년 丙寅年으로 적혀 있으나 乾隆10년은 乙丑年이다. 민간에서 연대를 인식할 때 중국의 연호보다는 干支가 정확하였으리라 사료되므로 1746년으로 보았다.
토지를 판 이는 李斗應乞伊이다. ‘應’은 漢字音을 借用한 表記로서 終聲 ‘o’을 표기하는 데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 이름을 현대식으로 발음하면 ‘둥걸이’라고 할 수 있다.
토지를 방매하는 이유는 구체적으로 적지 않았다. 조선전기 공증을 위해 필수적이었던 구체적인 토지방매사유는 임란 이후 공증을 거치지 않는 토지 거래가 일반화되면서 이와 같이 ‘긴요히 쓸 곳이 있어서’ 등의 형식적인 어투로 변화해갔다.
거래대상이 된 토지는 包諧員에 있는 밭이다. 字號는 親字이고 地番은 기재하지 않았다. 수확량을 기준으로 하면 4짐의 면적이고, 播種量을 기준으로 하면 5되지기이다. 본문의 刀落只는 升落只라고도 쓴다. 1되의 곡식을 파종할 수 있는 넓이를 의미하므로 이 토지의 면적은 곡식 5되를 파종할 만한 면적임을 알 수 있다. 토지의 가격은 동전 1냥으로 치러졌다.
이 문서에는 매매하는 토지를 소유하게 된 내력이 밝혀져 있지 않고 아울러 本文記에 대한 언급도 없다. 또 추탈담보문언에서 이의를 제기할 특정 집단을 거론하지도 않았다.
필집으로는 權重大가 참여하여 手決하였다.
朝鮮時代 明文에 관한 文書學的 硏究, 김성갑,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44
1차 작성자 : 전영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