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6년(숙종 32) 11월 21일 幼學 權{忄+甲}이 幼學 南羽溟에게 동전 55냥을 받고 渚谷員에 있는 논 3마지기를 팔면서 방매 사실의 증명을 위해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1706년(숙종 32) 11월 21일, 幼學 權{忄+甲}이 幼學 南羽溟에게 동전 55냥을 받고 渚谷員에 있는 논 3마지기를 팔면서 방매 사실의 증명을 위해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이 문서는 예천 安東權氏 春雨齋 문중에 전래된 매매명문의 하나로, 노비 등의 대리인을 통하지 않고 유생들 간에 직접 주고받은 계약서이다. 논을 팔게 된 사유는 흉년이다. 흉년으로 인해 나라에 납부해야 할 세금과 사적으로 필요한 각종 비용 등을 조달하기 어려워져서 家親의 명령에 따라 이 문서를 작성하게 되었다는 사연이 적혀 있다.
매매 대상이 된 토지는 渚谷員에 있는 420번 논으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현재 춘우재 종가가 있는 용문면 제곡리는 동 문중의 호적자료를 살펴보면 渚谷面 小渚谷里로 기록되어 있다. 渚谷員은 이 일대 들판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면적은 播種量을 기준으로 3마지기, 수확량을 기준으로 해서 6짐 2뭇이다. ‘八作’의 作은 한 지번으로 묶인 토지의 구획 순번 혹은 구획 수를 나타낸다. 논의 값은 동전 44냥으로 쳐서 지불되었다.
이 문서의 작성에는 證人이나 證保, 筆執 등을 따로 참여시키지 않고 畓主가 자필로 직접 작성하여 발급하였다. 이는 그만큼 거래의 긴장감이 덜하며 상대적으로 신용이 바탕이 된 행위로 판단된다. 또 공증이 철저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白文으로 거래하였던 조선 후기의 특징으로도 볼 수 있다.
朝鮮時代 明文에 관한 文書學的 硏究, 김성갑,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26
1차 작성자 : 전영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