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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1년 이의화(李宜華) 계후문기(繼後文記)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10+KSM-XD.1721.0000-20180630.6202540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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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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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증빙류-완의
내용분류: 사회-조직/운영-완의
작성주체 이명주, 이명세, 이명계, 이명휴, 이시의
작성시기 1721
형태사항 크기: 48.3 X 56.0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초전 벽진이씨 명암고택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월곡 1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21년 이의화(李宜華) 계후문기(繼後文記)
1721년(경종 1) 7월 11일에 이명주(李命周)의 둘째 아들 이의화(李宜華)이명세(李命世)의 양자 삼는다는 내용으로 작성된 계후문기(繼後文記)이다. 예전부터 약속한 양자의 약속을 지금 지키기 위해 여러 형제들이 모여서 글로 적어 준다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유지영

상세정보

1721년에 李命世의 양자로 李命周의 둘째 아들 李宜華을 들이는 내용의 繼後文記
1721년(경종 1) 7월 11일에 李命世의 양자로 李命周의 둘째 아들 李宜華를 들이는 내용의 繼後文記이다. 이명주가 발급했으며, 수취자는 이명세이다. 증인으로 仲兄 李命啓와 第四兄 李命休, 甥姪孫 李是椅가 필집으로 猶子 李台華가 문서작성에 참여하고 있다.
문서 본문은 다음과 같다.
"네가 정실에게서 자식이 없어서 처지가 영락하고 외롭다. 매번 나의 둘째 아들 宜華로 繼後하겠다고 말했는데, 天倫大義가 용이하지 않아서 의논을 미뤘다가 세월이 지금까지 이르도록 결정하지 못하였다. 지금 형제가 모두 쇠약하고 늙어서 질병이 점점 심해져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중의 일은 예측할 수 없고, 至情之間에도 어려워서 그 간절함을 끝내 어기기도 한다. 이에 형제가 한자리에 모여서 함께 논의하여 허여함을 허용하는 뜻을 글로 적어 준다."라고 하였다.
朝鮮時代 明文에 관한 文書學的 硏究, 김성갑,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4
1차 작성자 : 유지영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21년 이의화(李宜華) 계후문기(繼後文記)

康熙陸拾年辛丑七月十一日。末弟命世處文記。
右文爲。汝以正室無子。身世零丁。每以吾第二子
宜華繼後爲言。而天倫大義。有難容易。議
爲遷延。歲月至此未決。目今兄弟俱在衰老。疾
病侵尋。死亡無日。日後人事。有不可逆覩。至情之
間亦難。終違其懇。玆與兄弟合席共議。以示許
與之意。而書以贈之。

第三兄。命周[着名]。
證。仲兄命啓。第四兄。命休[着名]。甥姪孫。是椅[着名]
筆。猶子。台華[着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