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892년 곽치도(郭致道) 외 2인 상서(上書) 초본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10+KSM-XB.1892.0000-20180630.79223100017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작성주체 곽치도, 곽치옥, 곽치열, 경상감영
작성시기 1892
형태사항 크기: 70.0 X 41.5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고령 관동 성산이씨 홍와고택 /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본관 1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92년 곽치도(郭致道) 외 2인 상서(上書) 초본
1892년(고종 29) 5월에 고령(高靈)에 사는 유학(幼學) 곽치도(郭致道) 등이 경상감영에 올린 산송 상서(上書)이다. 이들의 선조 무덤은 초계(草溪) 덕곡면(德谷面)에 있는데 누군지 모르는 자가 투장(偸葬)한 사건이 2번이나 발생하여, 이를 관아에서 파내 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다.
1차 작성자 : 유지영

상세정보

1892년 5월에 幼學 郭致道 등이 경삼감영에 올린 上書
1892년(고종 29) 5월에 高靈에 사는 幼學 郭致道, 郭致鈺, 郭致說 등이 경상감영에 올린 산송 上書이다. 감영의 처결이 적혀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 잘려나가 있다. 본 상서는 성주이씨 홍와종택에 보관되어 있던 것이다.
상서 본문에서 호소하고 있는 사항은 다음과 같다.
"偸埋한 무덤을 무덤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파내지 않으면 偸埋한 사람은 장차 꺼릴 것이 없어지고 잘못된 행동이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저희들 선조의 묘는 草溪 德谷面에 있습니다. 300년간 수호해 오면서 한 조각 다른 무덤을 局內에 허용하지 않았고, 중간에 미혹하게 犯葬하는 자가 있어서 감영과 읍에서 즉시 파낸 것이 3차례에 이릅니다. 뜻하지 않게 지난 무자년(1888)에 누군지 모르는 자가 밤을 틈타 저희 묘 좌측 핍근한 땅에 偸埋했습니다. 저희들은 분통함을 이기지 못하고 바로 官庭에 呈訴하였습니다. 坊曲을 찾아다닐 겨를도 없이 갑자기 또 1개 偸塚이 우리 묘 우측 옆 지척에서 핍박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어서 ‘偸埋한 자가 100일간 나타나지 않으면 관에서 掘移한다.’는 법전의 조항을 들면서 두 무덤을 관아에서 파내게 지시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朝鮮時代 明文에 관한 文書學的 硏究, 김성갑,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4
1차 작성자 : 유지영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92년 곽치도(郭致道) 외 2인 상서(上書) 초본

高靈幼學郭致道郭致鈺郭致說等。謹齋沐上書于
巡相閤下。伏以。偸埋之塚。苟以塚主不現而不掘。則偸埋者將何所顧忌。而不爲之接踵矣乎。生等先墓在草溪德谷面。守護
三百年。不許一坏他塚於局內。中間未或無犯葬者。而營官卽掘。至於三次矣。不意去戊子年分。不知何許漢。乘夜偸埋於墓左
逼近之地。生等不勝憤惋。方號訴官庭。搜覓坊曲之不暇。而忽又一偸塚。更逼於墓右咫尺之傍。噫。前偸者嘗試而中其
計。則後偸者之故犯而肆其惡。必然之理也。世習如此。將何變不出乎。謹按法典曰。偸埋者。百日不現。則自官掘移。今此
二偸塚。一則五年。一則三年。蓋以百日之近。而國法尙不貸。況五年三年之久。而又何所寬暇。以待蔑法者之現捉乎。生等痛哭
刻骨。一日不暇容。但以法掘之自在。忍待于今日。玆敢泣訴于
棠化仁明之下。伏乞。參商後。同二偸塚五年三年之不現者。依法典特爲掘移。以嚴國家之三尺。且令遐土士族得以
保護先塋之地。千萬血祝。謹冒昧以陳。
巡相閤下處分。壬辰五月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