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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3년 이석화(李錫華) 등 소지(所志)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10+KSM-XB.1743.0000-20180630.6202310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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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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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고문서 유형
내용분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작성주체 이태화, 이석화, 영천군
작성시기 1743
형태사항 크기: 54.5 X 41.0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성주 초전 벽진이씨 명암고택 /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월곡 1리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43년 이석화(李錫華) 등 소지(所志)
1847년(영조 19) 3월에 영천(永川)에 사는 이태화(李台華) 이석화(李錫華) 등이 고을 관아에 올린 소지(所志)이다. 군정(軍丁)을 보내어 도야(陶冶)에 새로 생긴 보(洑)를 보수하여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다.
1차 작성자 : 유지영

상세정보

1743년에 永川에 사는 李錫華 등이 고을 관아에 올린 所志
1847년(영조 19) 3월에 永川에 사는 李台華 李錫華 등이 고을 관아에 올린 所志이다.
본 소지 본문에서 李錫華 등은 다음과 같이 요청하였다.
"陶冶 아래에 새로 생긴 洑의 形止는 일전에 尺量하여 鄕色이 일일이 아뢰었으니, 다시 번거롭게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지난해 홍수 이후 무너진 지점은 전혀 없고 흙이 쌓인 곳이 많습니다. 그 形止로 말하면 수백 명의 烟丁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올해에 이익을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軍丁을 청하지 않은 것은 대개 喪葬으로 겨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봄 농사가 이미 닥쳐오고 한 조각 땅도 금과 같은데, 이러한 기름진 상급의 땅을 등한시하고 묵힌다면, 개탄스러울 뿐 아닙니다. 부역을 도리어 그만두고 절실한 것에 나아가지 않으면, 더욱 난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달 초순 동안 軍丁 와서 부역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 분명한 결단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상과 같이 상황을 설명하면서 軍丁을 보내어 工役을 도와달라고 요청하고, 아울러 鄭之汗 이라는 인물과 쟁송한 지점도 잘 측량해서 조정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대해 관아에서는 27일에 처결을 내렸는데, 동쪽의 조금 높은 지점은 鄭之汗의 자손에게 지급하고, 洑에 대한 공역을 위한 軍丁과 100개의 가마니를 보내주라고 지시하였다.
朝鮮時代 明文에 관한 文書學的 硏究, 김성갑,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4
1차 작성자 : 유지영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43년 이석화(李錫華) 등 소지(所志)

化民李台華李錫華等。
右謹言所志段。陶冶下新洑形止。日昨尺量。鄕色這這告達矣。更不須煩瀆。而大槪去年大水之後。了無鑿破之地。多有聚土之處▣▣
形止言之。則不用累百烟丁。可以蒙利於今年。而至于今未訴請軍者。槪緣喪葬未暇之致也。今則春事已迫。片土如金。如許音腴
上上之土。等閑陳棄者。不但慨然。付役還止。未就其切者。人目所及。益切慚赧。故此月初間日。待軍丁之更來付役。而尙無皁白。又於今年
未告切給軍勸農盛會。恃未免虛負。故玆敢仰籲。他面大里軍丁。題下後。別遣知事色吏。日日看事。則十日之前。可以成切。而曾前
之汗
量名爭訟之處。鄕色割半洑地之日量出。則在於東邊洑外川邊。而若無斷案文字。則亦將有後日雜談。故更爲倂訴。伏乞。別樣
嚴題。以作文案。更爲分付色吏與當初首唱。着力看役。以爲今年蒙利事。行下爲只爲。

癸亥三月日。

鄭之汗量處。元非罪。
今新洑作畓處。故頃日
鄕色摘奸時。一從量案
打量。以東邊稍高處。劃
給於之汗子孫處是遣。洑
役次。本面軍丁及空石百
立題給矣。聞道日以上
姑未赴役是如爲臥乎所。
約正處。更爲傳令。以送
廣川等軍丁。赴
役後。更訴宜當事。
卄七。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