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4월 28일 金元大가 상대방이 사윗감을 구한다고 하여 일이 성사될지 안 될지 속히 답장을 보내달라고 하기 위해 영양 주곡의 한양조씨에게 보낸 편지
1943년 4월 28일 金元大가 영양 주곡의 한양조씨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상대방이 사윗감을 구한다고 하여 김원대가 마음에 있는 바를 편지에 써서 보내면서 일이 성사될지 안 될지 속히 답장을 보내달라고 하는 내용이다.
편지의 내용을 소개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지난번 川上[川前]을 한번 방문한 것은 오히려 만났다고 할 만하겠습니까. 다시 남은 이야기를 펴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했으나, 마침 손님들이 모인 분주한 자리였고, 출발에 임해서는 문득 잊어버렸다고 했다. 그것이 아직까지 마음에 걸려서 도리어 만남이 없었던 것만도 못하다고 했다.
삼가 요즘 고요하게 기거하는 형제분들은 우애롭고, 문밖의 여러 가지에 응대하는 것은 많음을 면치 못할 것 같으나, 단지 이것은 자기 자신의 분수 안의 일이라고 했다. 상대방의 연세 높으신 할아버지께서는 침식이 연이어 잘 호위되고, 阮府兄이 북쪽으로 가다가 수레를 용감히 돌린 것은 축할만하다고 했다. 흉년에 가족을 돌보는데 데에 눈썹을 찌푸리지는 않은지 물으며, 이 수준을 넘어야 바야흐로 장부의 기상이라고 할 만하지만 어찌 이런 일이 없겠냐고 했다.
본인의 용렬한 상황은 이미 전에 상대방이 아셨으니 너절하게 말씀 드릴 것이 없지만, 이른바 약간의 지향도 점차 사그라졌다고 했다. 오직 어른을 봉양하고 아이를 기르느라 털끝만큼 남은 생각도 없으나 일용사는 바로 깊은 못에 임한 듯 얇은 얼음을 밟는 것 같을 뿐이라고 했다.
다만 확실히 해야 할 것이 있는데, 상대방이 지난해부터 사위를 고른다고 했으니, 汝南이 이른바 '이것은 쉽다'고 한 것에 대해 지금이 어떤 시대이냐며 수긍하지 않는 뜻을 드러내었다. 가까운 시일 내에 혹 이야기가 이루어진 곳이 있는지 물었다. 본인의 마음에 있는 바를 말하기는 했지만, 胎紙가 別幅에 있으니, 속히 답장을 보내어 일이 성사되는지 안 되는지를 보여 달라고 했다. 일이 이루어지거나 일을 저버리는 것도 더디고 빠른 사이에 달려있기 때문으로 보았다.
마지막 부분에는 바빠서 예식을 다 펴지 못하니 형제분께서는 살펴봐 주길 바라며, 완부형의 방문을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발급자 김원대는 자는 善可, 호는 臨軒, 본관은 의성이다.
1차 작성자 : 김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