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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박종태(朴鍾泰)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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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박종태, 조만기
작성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작성시기 1929
형태사항 크기: 22.8 X 34.6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양 주곡 한양조씨 옥천종택 /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929년 박종태(朴鍾泰) 서간(書簡)
1929년 6월 8일에 사돈 박종태가 혼인과 관련된 일을 묻기 위해 조만기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기 가족들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이어서 조식칠과의 혼인과 관련된 일을 언급하고 있다. 혼수품과 왕래하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니 그 예식을 생략하는 것이 어떠한지 상대에게 묻고 있다. 끝으로 형세를 살펴 당신을 뵈러 가겠다고 하고 있다.
1차 작성자 : 김인호

상세정보

1929년 6월 8일에 사돈 박종태(朴鍾泰)가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혼인과 관련된 일을 붇기 위해 조만기(趙萬基)에게 보낸 편지
1929년 6월 8일에 사돈 박종태(朴鍾泰)가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혼인과 관련된 일을 묻기 위해 조만기(趙萬基)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뜻밖에 당신의 막내 형제가 더위를 무릅쓰고 멀리서 방문하였고 더하여 당신의 편지도 전해주었는데 종이에 가득한 당신의 말씀이 안부를 묻는 것 외에 다양한 말이 있어서 참으로 기쁘고 감사하다고 하고 있다. 또한 상대방의 작은 아버지, 여러 형제, 여러 집안 사람들도 잘 지낸다고 하니 마음이 위로된다고 하고 있다. 이어서 자신의 아버지와 식솔들은 큰 탈을 면하였고 여식도 예전대로 지내고 있다고 하고 있다. 예식에 쓰일 물품의 경우에는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고 또한 번거롭게 왕래할 필요가 없으니 혹 상대방은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를 묻고 있다. 여기서 예식은 조만기의 둘째아들 조석칠(趙錫七)박종태 딸과의 혼인을 이야기한다. 끝으로 상대방을 방문할 계획이었으나 이루지 못하고 일의 형세를 살펴 뵙겠다고 하고 있다.
발신자 박종태(朴鍾泰, 1887~1959)는 본관 무안(務安) 이다. 1919년 3월 18일 영해읍 장날에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여 일제의 주요기관을 파괴하였다. 이 일로 체포되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아 옥고를 치렀다. 수신인 조만기(趙萬基, 1881~1912)는 본관 한양(漢陽), 자는 맹목(孟睦), 호는 창사(倉斯) 이고 아버지는 조수용(趙銖容)이다. 1896년 외종형 이상룡(李相龍)과 의병 봉기 계획에 참여하였고 영양지역 의병장인 조승기(趙承基)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1911년 가족을 데리고 중국 동삼성으로 건너가 경학사, 신흥학교 운영에 참여하였다.
이 편지는 한양조씨와 무안박씨 간의 교류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비록 조선이 멸망하였지만 향촌사회에서는 과거와 같이 혼인을 통해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는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다.
1차 작성자 : 김인호

이미지

원문 텍스트

1929년 박종태(朴鍾泰) 서간(書簡)

謂外季君。冒炎遠顧。兼拜
惠緘。溢幅辭意。有在於寒喧之外。令
人可喜。而又可感也。仍伏詢玆者。
亞庭體事。崇謐。
棣床友履。湛重。同堂僉候勻頔。慰仰
區區。旣深且僕。查契。老人候。入近免諐。餘率。
免警。賤息。亦依在耳。來儀。不必爲是腆念。
亦不必固煩往來。而於穉情。卽或似無
妨耶。第於今番。意謂聯轡矣。竟孤此望。
悵仰殊深。速送之示。從當觀勢圖之耳。餘。
因忙擾。不備式。伏惟
情照。

己巳 六月 初八日。 査契 朴鍾泰 拜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