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5월 5일에 조유기(趙裕基)가 중부(仲父)에게 가족들의 안부를 묻기 위해 보낸 편지
1919년 5월 5일에 조유기(趙裕基)가 중부(仲父)에게 가족들의 안부를 묻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중부에게 새해를 맞이하여 몸은 건강하시며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있다. 또한 종부의 죽음은 참혹한 일이라고 하며 구아(九阿)의 재혼은 언제로 정해졌는지를 알려달라고 하고 있다. 이어서 자기 가족 소식을 전하고 있다. 아버지는 건강에 이상이 없으시나 아이들은 감기와 기침으로 괴로워하고 있으며 자신은 학산(鶴山) 아래에서 우거하며 별탈없이 지내고 있다라고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은(殷)이의 혼사가 문경(聞慶) 갈평(葛坪)의 사촌(沙村) 경기 씨(景琪氏) 손자로 정해졌다고 하는데 그의 자질이 매우 뛰어나다고 칭찬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 고노(雇奴)가 들어왔으나 날이 춥고 땔감이 귀하여 군색함을 면하기 어려울 것 같으니 고민스럽다고 하고 있다. 결혼에 쓰일 종이(昏簡)는 미리 사두었으니 가까운 시일에 보낼 것이라고 하며 편지를 마치고 있다.
조유기(趙裕基, 1887~1960)는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맹극(孟極)이다. 아버지는 조세용(趙世容)이다. 조세용의 생부(生父)는 조병시(趙秉蓍)였으나 후에 조병만(趙秉萬)의 양자로 들어간다. 따라서 이 편지의 중부는 조병성(趙秉成)의 양자로 들어간 조수용(趙銖容)으로 판단되지만 족보와 시기가 맞지 않아 자세한 상황을 파악할 수 없다. 또한 편지에 등장하는 구아는 조수용의 손자 조석구(趙錫九)를 의미한다고 생각된다. 그는 의성김씨와 혼인했지만 후에 안동권씨와 혼인을 하게 된다.
이 편지는 과거 한 가문의 집안사정과 구체적인 사실들을 파악하는 하나의 자료가 될 것이며 가문간의 혼인이 가지는 의미를 다신 한 번 파악할 수 있다는데 의미가 있을 것이다.
1차 작성자 : 김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