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2월 15일에 이태일(李泰一)이 조상의 복관을 축하하기 위해 보낸 편지
1900년 2월 15일에 이태일(李泰一)이 조상의 복관을 축하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지난번 무릉의 모임을 통해 당신을 만났는데 그 때 많은 정을 내려주셔서 참으로 감사했다고 하고 있다. 무릉은 안동 남후면에 있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서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꿈속에서 은후(隱候)를 외고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은후는 남조 양나라 사람인 심약(沈約)을 의미한다. 시호는 은(隱)이며 여러 벼슬을 거쳤지만 정치가보다는 문인으로서 유명하였다. 이 편지에서는 영리에 관심을 두지 않고 학문에 힘쓰는 상대방을 심약에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 이어서 운수가 좋은 날을 회복하여 상대방 조상 즉 조덕린의 복관이 이루어지니 축하한다고 하며 자신도 축하 제사를 지내는 자리에 가야 하지만 아버지의 병으로 가지 못한다고 하고 있다. 끝으로 다음달에 서산 김흥락(金興洛, 1827~1899)의 장사지내는 곳에 갈 것이라고 하면서 그 때 상대방을 만나는 것이 어떠하겠냐고 하고 있다.
후손들은 조덕린의 신원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순조 때도 복관이 이루어졌지만 노론계의 유생들에게 계속적인 공격을 받게 된다. 이 편지에서의 복관은 고종 때 복관과 관련된 편지이다. 『조선왕조실록』 고종36년 11월 11일 기사를 보면 조덕린의 문제는 비록 오래된 일이지만 이미 앞에 여러 왕들이 특지를 내렸으므로 죄명을 말소하고 그의 관작을 회복하라고 하고 있다. 발신자 이태일(李泰一, 1860~1944)은 본관 벽진(碧珍), 자는 삼수(三搜), 호는 명암(明庵)이다. 아버지는 이승원(李承源)이고 조부인 이진현(李鎭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김흥락(金興洛) 등과 교유하였고 문집으로는 제자 이종기(李宗基), 최석기(崔碩基)가 편집한 『명암집(明庵集)』이 있다. 수신인은 한양조씨 집안의 다른 편지를 살펴보았을 때 조수용(趙銖容, 1856~1910)으로 추측된다. 생부는 조병시(趙秉蓍)이고 조병성(趙秉成)의 양자가 된다. 자는 형로(衡老), 호는 두산(斗山)이다. 아내는 고성이씨 이종태(李鍾泰)의 딸이다.
이 편지는 한양조씨 가문의 조덕린의 선양을 통해 가문의 권위를 강화시키는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이다. 조덕린의 후손들은 지속적으로 선조의 신원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복관이 이루어지자 주위의 여러 사대부들이 축하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한양조씨 가문은 향촌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친 것이다.
1차 작성자 : 김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