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년 3월 11일, 객지에 나가 있는 朴勝弘이 조부 朴齊淵(1807~1890)에게 보낸 답장 편지
1886년 3월 11일, 객지에 나가 있는 朴勝弘이 조부 朴齊淵(1807~1890)에게 보낸 답장 편지이다.
悳川 從叔와 壽院 族祖가 내방한 편에 편지를 받고, 수신인이 평안하다는 안부와 발신인의 어머니 및 가족들의 안부를 알게 된 감회를 전하고, 객지에서 자신은 잘 지낸다는 안부를 전하며, 南齋 族叔도 잘 지내고 주인집도 무탈하다는 등의 소식도 아울러 전하였다. 이어 實銜을 받는 것이 지체되고 있어 兼職이라도 먼저 받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宦路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실직을 받은 뒤에 돌아갈 계획임을 밝혔다.
平度公 先祖의 別廟를 창건하는 일이 시작되었는데, 한양의 竹洞 大監이 먼저 200꿰미의 돈을 내면서 안동과 영주의 各派에 200꿰미씩을 배정하였는데, 흉년에 돈을 마련할 길이 막막하니 문중에 이러한 사정을 잘 알려달라고 하였다. 환로에 나가기 위해 한양에 머물고 있는 중에 고향에 있는 조부에게 보낸 편지로, 그 당시 지방 유생이 관직을 얻기 위해 애쓰는 모습과 그 어려웠던 사정을 엿볼 수 있는 문서이다.
'平度公'은 朴誾(1370∼1422)의 諡號이다. 자는 仰之, 호는 釣隱, 본관은 반남이다.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으로 조선 초기에 좌의정을 지냈다. 반남박씨는 고려조의 文政公 朴尙衷에서 비롯하였다. 아들이 박은으로, 4세대 지나 司直을 역임한 琛과 진사인 珩 형제에 이르러 안동으로 이거하여 세거하게 되었으며, 영주의 명문으로 성장하였다.
수신인 박제연의 字는 聖源, 號는 吾軒, 본관은 潘南이다. 영주 수도리[섬계, 무섬마을]에 거주했다. 어머니는 안동권씨이고, 부인은 의성김씨의 鶴峯 金誠一(1538∼1593)의 후예이다. 1840년 문과 급제했고, 병조참판, 의금부사 등을 역임했다. 문집으로 『오헌유고』가 있다.
『반남박씨 판관공파 세보』, 2001.,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