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886년 박승홍(朴勝弘)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9+KSM-XF.1886.0000-20170630.068125700050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박승홍, 박제연
작성시기 1886
형태사항 크기: 23.5 X 38.9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주 무섬 반남박씨 오헌고택 /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86년 박승홍(朴勝弘) 서간(書簡)
1886년 3월 11일, 객지에 나가 있는 박승홍(朴勝弘)이 조부 박제연(朴齊淵)에게 보낸 편지이다. 자신은 관직을 얻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알렸으며, 평도공(平度公) 박은(朴誾) 선조의 별묘를 창건하는 일로 한양에서 200꿰미의 돈을 내며 안동영주의 각파에도 200꿰미를 배정했는데 흉년에 돈을 마련할 길이 막막하니 문중에 이러한 사정을 잘 알려달라고 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1차 작성자 : 김명자

상세정보

1886년 3월 11일, 객지에 나가 있는 朴勝弘이 조부 朴齊淵(1807~1890)에게 보낸 답장 편지
1886년 3월 11일, 객지에 나가 있는 朴勝弘이 조부 朴齊淵(1807~1890)에게 보낸 답장 편지이다.
悳川 從叔와 壽院 族祖가 내방한 편에 편지를 받고, 수신인이 평안하다는 안부와 발신인의 어머니 및 가족들의 안부를 알게 된 감회를 전하고, 객지에서 자신은 잘 지낸다는 안부를 전하며, 南齋 族叔도 잘 지내고 주인집도 무탈하다는 등의 소식도 아울러 전하였다. 이어 實銜을 받는 것이 지체되고 있어 兼職이라도 먼저 받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宦路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실직을 받은 뒤에 돌아갈 계획임을 밝혔다.
平度公 先祖의 別廟를 창건하는 일이 시작되었는데, 한양의 竹洞 大監이 먼저 200꿰미의 돈을 내면서 안동영주의 各派에 200꿰미씩을 배정하였는데, 흉년에 돈을 마련할 길이 막막하니 문중에 이러한 사정을 잘 알려달라고 하였다. 환로에 나가기 위해 한양에 머물고 있는 중에 고향에 있는 조부에게 보낸 편지로, 그 당시 지방 유생이 관직을 얻기 위해 애쓰는 모습과 그 어려웠던 사정을 엿볼 수 있는 문서이다.
'平度公'은 朴誾(1370∼1422)의 諡號이다. 자는 仰之, 호는 釣隱, 본관은 반남이다.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으로 조선 초기에 좌의정을 지냈다. 반남박씨는 고려조의 文政公 朴尙衷에서 비롯하였다. 아들이 박은으로, 4세대 지나 司直을 역임한 과 진사인 형제에 이르러 안동으로 이거하여 세거하게 되었으며, 영주의 명문으로 성장하였다.
수신인 박제연의 字는 聖源, 號는 吾軒, 본관은 潘南이다. 영주 수도리[섬계, 무섬마을]에 거주했다. 어머니는 안동권씨이고, 부인은 의성김씨의 鶴峯 金誠一(1538∼1593)의 후예이다. 1840년 문과 급제했고, 병조참판, 의금부사 등을 역임했다. 문집으로 『오헌유고』가 있다.
『반남박씨 판관공파 세보』, 2001.,
1차 작성자 : 김승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86년 박승홍(朴勝弘) 서간(書簡)

悳川從叔與壽院族祖來訪。兼
伏承下書。伏喜萬萬。更伏審仲
春漸和。
氣體候連向萬康。慈候無添
損節。從大父主兄弟分氣體平安。
大小家兒輩各保無樣否。遠伏
慕區區不任下誠。孫。客食姑依。南
齋進士叔安過。主家亦無頉。伏幸。
而第實啣。至此稽緩。故雖兼職
爲先圖成。而此亦極難。世上宦路之
難。於是乎果然伏想也。執固然矣。而
伏恨奈何。旣爲久留。而歸期當在實職爲之後
伏計耳。吾宗有大事。故玆以上白矣。平度
公先祖別廟創建爲始。而京中門議。不無
派錢。而竹洞大監。先出二百緡之爲派錢排
定。則安榮兩邑派二百緡云云。則不
是小慮。況如此凶荒之歲。錢路極
艱。各派貧所。何以辦出也。此
意照知諸宗中。伏望伏望耳。德川叔初
路之行。資斧且不足。故換形至比。悵恨
中卽旋告歸。客地奉別之際。薪薪之歎。不
可勝言也。餘。便忙。不備。伏惟。
丙戌三月十一日。孫 勝弘 上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