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4년 4월 25일 朴齊性(1823~?)이 친척 朴齊淵(1807~1890)에게 보낸 답장
1884년 4월 25일 朴齊性(1823~?)이 친척 朴齊淵(1807~1890)에게 보낸 답장이다.
뜻밖에 다시 영남으로 오게 되었는데 상거가 백리 정도이니 음성과 모습을 직접 뵌 듯하다고 하고, 먼저 편지를 보내 주셔서 영감의 체도가 만중하심을 살피니 축원하던 바와 같으며, 고령에 건강하심을 경하하며 흉년 뒤에 조섭하시는 절도에 대해 염려한다고 하였다.
자신은 다스리는 곳이 잔약한데 賑恤하는 일로 고심을 하고 있으며, 늙고 병들어서 공무를 억지로 하지도 못하고 있으니 민망하고 가련하다고 하였다. 몸소 오시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 자제나 손자를 시켜서 대신하시면 감사하겠다고 하였다.
별지로, 본관 수령이 같은 종중 출신인데 평소에 돈목한 정의의 정도가 어떤지 모르겠다면서, 벌써 도임했다고 들었으니 아마 공무로 만날 날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발신인 박제성의 자는 善堯이고, 본관은 반남이다. 1843년 식년시 생원으로 합격하였으며 영평 현령과 영천 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수신인 박제연의 자는 聖源, 호는 吾軒이고 본관은 潘南이다. 영주 수도리[무섬마을]에 거주하였다. 어머니는 안동권씨이고, 부인은 의성김씨의 鶴峯 金誠一(1538∼1593)의 후예이다. 1840년 문과 급제했고, 병조참판, 의금부사 등을 역임했다. 문집으로 『오헌유고』가 있다.
피봉 여백의 '壯洞承旨彛陽阮府丈[장동의 승지 彛陽의 숙부]'라는 기록은 발신인의 신상에 대한 일종의 메모인데, 후대에 문집의 편차나 간찰의 성첩 등 분류상의 필요로 追記한 것인 듯하다.
『반남박씨 판관공파 세보』, 2001.,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