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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박정양(朴定陽)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9+KSM-XF.1882.0000-20170630.068125700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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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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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박정양, 박제연
작성시기 1882
형태사항 크기: 23 X 46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주 무섬 반남박씨 오헌고택 /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82년 박정양(朴定陽) 서간(書簡)
1882년 3월 13일 박정양(朴定陽)영주 섬계[무섬마을, 수도리]박제연(朴齊淵)에게 보낸 편지이다. 상대방이 말한 탕건(宕巾)은 가진 곳을 보지 못해서 말씀을 따르지 못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비록 형세로 인한 것이기는 하지만 송구하고 한탄스럽다고 하였다. 박제연이 탕건을 구해달라고 부탁한 편지에 대한 답장으로 짐작된다.
1차 작성자 : 김명자

상세정보

1882년 3월 13일 朴定陽(1841~1904)이 榮川[영주] 섬계[무섬마을, 수도리]의 參議宅 朴齊淵(1807~1890)에게 보낸 답신
1882년 3월 13일 朴定陽(1841~1904)이 榮川[영주] 섬계[무섬마을, 수도리]의 參議宅 朴齊淵(1807~1890)에게 보낸 답신이다.
소식이 막혀 우러러 그리워하던 중에 댁의 손자가 방문하여 편지를 전해주니 더욱 은혜로우며, 이를 통해 영감 체후가 만호하심을 살피니 위로된다고 하였다. 자신은 여전히 지내지만 가끔 종기 증세가 있었는데 아직 시원히 낫지 않으니 민망하고, 그저 관청이 배승한 것이 다행하다고 하였다.
말씀하신 탕건은, 가진 곳을 못 보았으므로 말씀을 따르지 못하게 되었다면서, 비록 형세로 인한 것이기는 하지만 송구하고 한탄스럽다고 하였다.
내용이 정확하지는 않으나, 박제연이 탕건을 구할 수 있는가 라고 물었는데 박정양이 요즘은 구할 수 없다고 하는 편지로 보인다. 고종 즉위 이후 대원군에 의한 복제 간소화의 경향이 있었는데, 이미 상당히 진전된 상황을 볼 수 있다.
발신인 박정양의 字는 致中, 號는 竹泉이다. 1866년 문과에 급제하고 신사유람단으로 일본을 방문하고 이조 참판협판교섭통상사무를 지낸 뒤 주미공사로 파견되었다. 갑오경장 이후 내무대신과 총리대신을 역임한 개화파의 지도자였다.
수신인 박제연의 字는 聖源, 號는 吾軒, 본관은 潘南이다. 어머니는 안동권씨이고, 부인은 의성김씨의 鶴峯 金誠一(1538∼1593)의 후예이다. 1840년 문과 급제했고, 병조참판, 의금부사 등을 역임했다. 문집으로 『오헌유고』가 있다.
『반남박씨 판관공파 세보』, 2001.,
1차 작성자 : 김승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82년 박정양(朴定陽) 서간(書簡)

參議宅 回納 榮川
竹洞謝書。

阻仰方勤中。
令孫來訪。旣極慰豁。
而况又惠書。出自袖
中。尤極仰荷。謹審
間來
令體萬護。仰慰斗大。
宗下一依。而間有瘇症。
尙此未完。可悶。惟幸衙
節拜承耳。
惠示宕巾。見無所存。故不
得仰副。雖緣勢使。悚
歎則極矣。餘。爲此。姑不
備謝。
壬午三月旬三。宗下 定陽 拜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