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8년 6월 28일, 姜𨬋이 형의 죽음에 위문을 보내온 상대방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보내는 편지
1878년 6월 28일, 姜𨬋(1836~1896)이 형의 죽음에 위문을 보내온 상대방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보내는 편지이다.
저는 백 가지 중에 하나도 용서받지 못할 몸으로 형의 죽음을 보고도 대신하지 못했으며, 찢어지는 아픔과 괴로운 죄는 하늘에게도 다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상대방이 보내 주신 위문을 받으니, 슬퍼하고 걱정해주시는 마음이 참으로 두터워 감정이 북받쳐 저절로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고 했다. 그러나 연달아 인편이 없었고 답장이 늦어져 두렵고 송구하다고 했다.
상대방은 더운 여름에 조용히 수양하시며 경전을 공부하시는 가운데 건강은 계절에 따라 편안하시며, 여러 식솔들도 한결같이 좋다고 하시니, 구구하게 그리움 마음을 다할 길 없다고 했다.
이어 본인의 안부를 전했다. 형의 시신을 황천으로 보내고 두터운 땅에 묻었다고 했다. 한 몸이 반으로 잘려 다시는 사람의 도리로 스스로 살 수 없으니 고통이 참으로 절실하다고 했다. 뜻한 구구한 사업들은 맹랑하고 무사한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더라도 昆季의 사이인데다 또 지기를 잃었으니, 이로부터 壎篪가 처절하여 다시는 화평의 음을 지을 수가 없다고 했다. 스스로 수양하며 성찰하여 성대히 돌봐주신 은혜의 만분의 일이라도 저버리지 않고 싶지만 부끄럽고 걱정이라고 했다. 나머지는 건강을 더 잘 돌보시어 본인의 정성에 부응해 주시길 바라며, 갖추어 올리지 못하니 살펴봐 달라고 하면서 편지를 끝맺었다.
발급인 강면의 자는 周卿, 호는 克齋, 본관은 진주이다. 봉화 법전 출신으로 姜獻奎의 아들이다. 학문과 덕망이 빼어나서 別薦․繡薦 되었으나 관직으로 나아가지는 않았다. 문집이 전한다.
1차 작성자 : 박세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