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8년 2월 22일 朴憲陽(1830~1894)이 영주 섬계[무섬마을, 수도리]의 친척 숙부 朴齊淵(1807~1890)에게 보낸 문안 편지
1878년 2월 22일 朴憲陽(1830~1894)이 영주 섬계[무섬마을, 수도리]의 친척 숙부 朴齊淵(1807~1890)에게 보낸 문안 편지이다.
오랫동안 안부를 여쭙지 못하고 그리워하던 중에 뜻밖에 댁의 손자가 방문하여 편지를 전해주니 우러러 위로된다고 하고, 영감의 체후가 어떠신지 물었다.
자신은 새로 도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송구영신의 시기를 당하여 간신히 지냈는데, 수많은 어지러운 일들은 말로 형언할 수 없다고 하였다.
발신인 박헌양의 字는 繼正이고, 본관은 반남이다. 1858년 식년시에 진사로 합격하여 호조 정랑을 거쳐 1894년 7월에 장흥 부사로 부임하였다. 같은 해 9월 동학군이 2차 봉기하고, 10월에 공주 우금치에서 패전한 후 수만 명이 웅치에서 장흥으로 진격하여 12월에 장령성이 함락되었다. 그때 부사 박헌양을 포함하여 96인이 전사하였다.
박제연의 字는 聖源, 號는 吾軒이다. 어머니는 안동권씨이고, 부인은 의성김씨의 鶴峯 金誠一(1538∼1593)의 후예이다. 1840년 문과 급제했고, 병조참판, 의금부사 등을 역임했다. 문집으로 『오헌유고』가 있다.
편지의 여백에 쓰인 '蓮洞尙州丈'(연동의 상주목사 어른)이라는 글은 발신인을 표시한 것이다. [당대나 후대의 필요로 附記한 것인 듯하다.]
『반남박씨 판관공파 세보』, 2001.,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