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877년 류치윤(柳致潤)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9+KSM-XF.1877.0000-20170630.068125700353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류치윤, 박제연
작성시기 1877
형태사항 크기: 29.4 X 41.2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주 무섬 반남박씨 오헌고택 /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77년 류치윤(柳致潤) 서간(書簡)
1877년 9월 22일, 류치윤(柳致潤)영주 섬계[무섬마을, 수도리]박제연(朴齊淵)에게 보낸 편지이다. 상대방 집안에 혼인할 젊은이가 있어 그의 혼처를 알아봐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간의 경과에 대해 알려주는 내용이다.
1차 작성자 : 김명자

상세정보

1877년 9월 22일, 弟 柳致潤(1805~1880)이 영주 섬계[무섬마을, 수도리]朴齊淵(1807~1890)에게 보낸 안부 편지
1877년 9월 22일, 弟 柳致潤(1805~1880)이 영주 섬계[무섬마을, 수도리]朴齊淵(1807~1890)에게 보낸 안부 편지이다.
열흘 동안 함께 지낸 일은 늘그막에 갖기 드물고 남다른 일로서 헤어지고 난 뒤의 아쉬움이 젊은 시절에 비해 배나 더하다고 했다. 은후는 南朝 때 梁나라의 시인인 沈約의 諡號인데, 그가 지은 〈別范安成〉의 시에 "우리네 인생살이 젊을 적에는 헤어져도 만날 기약 쉬웠는데, 그대와 함께 늙어가는 이 시절 다시는 헤어질 때 아니로다."라고 한 내용을 두고 한 말이다. 이어 헤어진 뒤의 안부를 묻고, 돌아온 뒤에 자신은 병에서 떨쳐 일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아이들과 가족들은 무탈하다는 안부를 전하였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 수신인이 부탁한 사항에 대하여 그간의 경과를 보고하고 있는데, 馬嶺의 族從 집에서 이미 정한 곳이 있고, 한들[大坪]의 三從姪 집에 閨秀가 있는데 이는 바로 參判 從兄의 從姪이라고 하며 소개하고 있다. 곧 수신인의 집안에 혼인할 郎子가 있어, 그에 대한 혼처를 알아봐달라는 부탁에 대한 응답을 하는 것이다. 즉 박제연의 둘째 손자인 勝圭(1864~1923)의 혼처에 대한 이야기로 보이며, 실제로 그의 부인은 全州柳氏이다.
발신인 류치윤의 자는 必身, 본관은 전주로, 少文의 아들이다. 1852년 향시에 합격하고, 蔭職으로 繕工監役에 제수되었고, 이어 江陵 縣令, 錦山 郡守 등을 지냈다.
수신인 박제연의 자는 聖源, 호는 吾軒, 본관은 潘南이다. 부인은 의성김씨 漢壽의 딸로, 학봉 김성일의 후예이다. 1840년 문과에 급제했고, 병조참판, 의금부사 등을 지냈다. 저서로 『오헌유고』가 있다.
『반남박씨 판관공파 세보』, 2001.,
『全州柳氏大同譜』, 2004.,
1차 작성자 : 김승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77년 류치윤(柳致潤) 서간(書簡)

謹拜候上。

匝旬譚讌。是衰暮稀異底事。而別後悵慼。尤
有倍於少壯時。儘乎隱侯詩之眞解人意也。居然
秋事爛珊。未惟玆來
靜裏動用崇衛。邇來聊遣之道。果在甚樣
味况。而庇致一例穩迪否。種種消仰滿萬。弟。歸
後一味病頓。少無自振之路。良悶良悶。而惟兒們
姑免見虞。大致俱依宿狀耳。第頃者相對時
俯囑。歸後仍輪囷在心。而馬嶺族從家已有
先定處。更無可意者。大坪三從姪有女婚。此
卽參判從兄從姪也。地閥固不須更言而相悉
也。閨節極叶吾兄求擇。弟意則似甚合。而未
知兄意果何如。第可隨諒處之矣。家樣惟
不贍足。而固知兄所望不在於此。故玆仰告耳。
細微都在兒子口盡。都漏不備。惟
統諒。
丁丑菊月卄二日。弟 柳致潤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