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10월 22일, 權泳夏가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詩를 보내기 위해 보낸 편지
1876년 10월 22일에 權泳夏(1810~1879)가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詩를 보내기 위해 注谷의 漢陽趙氏 측에 보낸 편지이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한 달 전에 상대방이 왕림했지만 자신은 병으로 칩복하고 있던 탓에 함께 유람하지 못했는데 지금까지도 섭섭하다고 하면서, 상대방과 그 조카들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쇠폐한 것이 나날이 심해지고 있으며, 조카 부자는 큰 탈은 없지만 그 상황이 갈수로 슬프다고 하였다. 또한 생활이 궁핍한 魯園 弟를 언급하면서 큰 흉년에 목숨을 보전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대해 매우 탄식하였다. 편지 말미에는 지난번 상대방에게 받은 율시 두 수에 대해 시를 지었지만 인편이 없어서 전하지 못하다가 지금 唐洞(영양군 청기면 당리) 편에 보내니, 본 뒤에 한 번 웃고 불살라 달라고 하였다.
발급인 권영하는 본관은 安東, 자는 聖遊, 호는 退逸軒이다. 父는 載遠, 生父는 載轅이며, 柳致明의 문인이다. 1850년 문과에 급제하여 弘文館修撰, 校理, 大司成, 兵曹參判 등을 역임하였다. 李敦禹가 행장을 짓고, 金興洛이 묘갈명과 묘지명을 찬하였다.
편지 중에서 자신의 신분을 '弟'라고 칭한 것으로 보아 수신인도 비슷한 연배임을 추측할 수 있다.
1차 작성자 : 서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