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5년 7월 9일, 侍下生 金壽淵(1828~1889)이 영주 섬계[무섬마을] 출신의 朴齊淵(1807~1890)에게 과거 응시에 잘 될 수 있도록 부탁하며 쓴 편지
1875년 7월 9일, 侍下生 金壽淵(1828~1889)이 영주 섬계[무섬마을] 출신의 朴齊淵(1807~1890)에게 과거 응시에 잘 될 수 있도록 부탁하며 쓴 편지이다.
상대방인 영감의 안부를 묻고, 여전히 지낸다는 자신의 안부를 간략히 전하였다. 科擧에 응시한 사람들이 京鄕間에 다 떨어졌다며 탄식하고, 新伯이 族誼와 親分으로 볼 때 모두 영감과 자별한 사이이므로, 믿는 것은 오로지 영감이 곁에 있는 것이며 자신이 영감을 父兄과 다름없이 믿는다고 하며 반드시 잘 될 수 있도록 부탁해달라고 간청하였다. 또 醴泉의 朴義哲은 자신과 겨루는 사람으로, 영남에서 제일가는 포부와 지방의 세 번 시험에서 모두 입격한 사람이라며 거듭 부탁하였다. 편지를 전달하러 간 종이 돌아오는 편에 뜻을 알려달라고 추신으로 적었다.
조선 말기 과거에 응시하려는 이가 벼슬살이하는 이에게 노골적으로 청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문서이다.
발급자 金壽淵의 자는 箕源, 호는 史山, 본관은 延安이다. 아버지는 鉉이며 영주 斗月에 살았다. 金晉秀가 묘갈명을 찬하였다. 수급자는 밝혀져 있지 않으나 내용으로 볼 때 문과 급제하여 병조참판, 의금부사 등을 역임한 박제연으로 판단된다. 박제연은 영주 섬계[무섬마을] 출신으로, 字는 聖源, 號는 吾軒, 본관은 潘南이다.
『반남박씨 판관공파 세보』, 2001.,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