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4년 4월 12일, 朴珪壽가 朴齊淵에게 상대방의 손자가 과거에 낙방한 것을 위로하기 위해 보낸 편지
1874년 4월 12일, 朴珪壽(1807~1877)가 朴齊淵(1807~1890)에게, 박제연의 손자가 과거시험의 일로 서울에 왔는데 헛되이 가게 된 것을 위로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純宗의 탄생이라는 국가의 경사를 기뻐하는 마음을 표현한 후 상대의 손자가 찾아온 인편에 상대와 집안 여러분 모두가 잘 지내는 줄 알게 되니 기쁘다고 하고, 그간에 연이어 자식을 잃는 참척을 당한 데 대하여 위로하면서 건강을 염려하였다. 박제연은 1869년에 둘째아들 朴右陽, 1872년에 맏아들 朴左陽을 연이어 잃었다.
이어서 자신에 대해서는 쇠약함이 날로 더해지는데 분수에 넘치는 자리를 욕되게 차지하고 있어 죄송하고 부끄럽다 하고, 상대방의 손자가 과거 응시 때문에 먼 길을 왔다가 합격하지 못하고 헛되이 가게 되어 한탄스럽다고 하였고, 언제 서울에 오게 되는지 물었다.
발신인 박규수는 자는 瓛卿, 호는 瓛齋, 본관은 반남이다. 서울에 거주하였다. 燕巖 朴趾源의 손자이다. 1848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1861년에 燕行使로 중국을 다녀왔고, 1862년에 이조 참의, 1866년에 평안도 관찰사를 지냈다. 1872년에 進賀使로 중국에 다녀왔다. 1873년에 우의정을 지냈다. 시호는 文翼이다. 저서로 『환재집』이 있다.
수신인 박제연은 자는 聖源, 호는 吾軒, 본관은 반남이다. 영주 수도리에 거주하였다. 1840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 참판을 지냈다. 저서로 『오헌유고』가 있다.
발신인의 이름 옆 여백에 '齋洞 右閤丈[재동의 우의정 어른]'이라 한 기록은 발신인의 당시 거주지와 직함에 대한 일종의 메모인데, 후대에 문집의 편차나 간찰의 성첩 등 분류상의 필요 때문에 追記한 것인 듯하다.
『潘南朴氏 判官公派 世譜』, 반남박씨 판관공파 종중, 2001.5.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