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2년 4월 18일, 宗末 朴齊聲이 상대의 아들 좌양이 사망했다는 부음을 듣고 달려가 조문해야 하지만, 아내가 여러 달 병을 앓아 누었다가 겨우 일어난 상태여서 가보지 못한다고 전하기 위해 朴齊淵(1807~1890)에게 쓴 편지
1872년 4월 18일, 宗末 朴齊聲이 영주 水島里의 朴齊淵(1807~1890)에게 쓴 弔慰 편지이다.
매번 찾아가 안부를 물으려고 하였으나 세상일에 얽매여 아직까지 뜻을 이루지 못해 간절히 그립다는 인사를 하고 안부를 간략히 물었다. 이어 아들의 喪을 당한 訃音을 듣고 놀라움을 표하며, 襄禮를 언제 하는지 염려하는 마음을 전하였다. 자신은 당연히 달려가 弔問해야 하지만, 아내가 여러 달 동안 병을 앓아누웠다가 겨우 일어난 상태여서 가지 못한다고 하며, 白紙 2束을 賻儀로 보내며, 몸이 조금 나아지면 한 번 찾아뵙겠다고 하였다.
1872년 3월 3일 박제연의 맏아들 左陽(1826~1872)이 죽었는데, 이때 쓴 慰狀이다.
발신인 朴齊聲은 피봉에서 '信云 宗末'이라고 자신을 칭하였는데, 신운은 현재 경북 醴泉郡 普門面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宗末은 同姓의 親知가 주로 편지에서 자신을 칭할 때 쓰는 말이다.
편지의 피봉을 보면, '水鳥 朴承旨 宅'으로 보내는 것이다. 수도는 무섬마을, 섬계 등으로 불렸다. 승지는 박제연을 일컫는다. 박제연은 자가 聖源, 호는 吾軒, 본관은 반남이다. 부인은 의성김씨 漢壽의 딸로, 학봉 김성일의 후예이다. 1840년에 문과에 급제했고, 병조참판, 의금부사 등을 지냈다. 문집으로 『오헌유고』가 있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