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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박제성(朴齊聲)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9+KSM-XF.1872.4790-20170630.06812570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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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박제성, 박제연
작성지역 경상북도 예천군 보문면
작성시기 1872
형태사항 크기: 23.2 X 43.7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주 무섬 반남박씨 오헌고택 /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72년 박제성(朴齊聲) 서간(書簡)
1872년 4월 18일, 종말(宗末) 박제성(朴齊聲)영주 수도리[무섬마을, 섬계]박제연(朴齊淵)에게 쓴 편지이다. 박제연의 아들 좌양이 사망했다는 부음을 듣고 달려가 조문해야 하지만, 아내가 여러 달 병을 앓아 누었다가 겨우 일어난 상태여서 가보지 못한다고 했다. 백지 2묶음을 부의로 보내고, 몸이 조금 나아지면 찾아뵙겠다는 내용을 전했다.
1차 작성자 : 김명자

상세정보

1872년 4월 18일, 宗末 朴齊聲이 상대의 아들 좌양이 사망했다는 부음을 듣고 달려가 조문해야 하지만, 아내가 여러 달 병을 앓아 누었다가 겨우 일어난 상태여서 가보지 못한다고 전하기 위해 朴齊淵(1807~1890)에게 쓴 편지
1872년 4월 18일, 宗末 朴齊聲영주 水島里朴齊淵(1807~1890)에게 쓴 弔慰 편지이다.
매번 찾아가 안부를 물으려고 하였으나 세상일에 얽매여 아직까지 뜻을 이루지 못해 간절히 그립다는 인사를 하고 안부를 간략히 물었다. 이어 아들의 喪을 당한 訃音을 듣고 놀라움을 표하며, 襄禮를 언제 하는지 염려하는 마음을 전하였다. 자신은 당연히 달려가 弔問해야 하지만, 아내가 여러 달 동안 병을 앓아누웠다가 겨우 일어난 상태여서 가지 못한다고 하며, 白紙 2束을 賻儀로 보내며, 몸이 조금 나아지면 한 번 찾아뵙겠다고 하였다.
1872년 3월 3일 박제연의 맏아들 左陽(1826~1872)이 죽었는데, 이때 쓴 慰狀이다.
발신인 朴齊聲은 피봉에서 '信云 宗末'이라고 자신을 칭하였는데, 신운은 현재 경북 醴泉郡 普門面에 있는 마을 이름이다. 宗末은 同姓의 親知가 주로 편지에서 자신을 칭할 때 쓰는 말이다.
편지의 피봉을 보면, '水鳥 朴承旨 宅'으로 보내는 것이다. 수도무섬마을, 섬계 등으로 불렸다. 승지는 박제연을 일컫는다. 박제연은 자가 聖源, 호는 吾軒, 본관은 반남이다. 부인은 의성김씨 漢壽의 딸로, 학봉 김성일의 후예이다. 1840년에 문과에 급제했고, 병조참판, 의금부사 등을 지냈다. 문집으로 『오헌유고』가 있다.
1차 작성자 : 김승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72년 박제성(朴齊聲) 서간(書簡)

水鳥 朴承旨 宅 入納。
信云 宗末 候書。謹封。
每擬晉候。汨於塵臼。未得
源源承誨。慕仰益切。伏
未審旱暑
氣軆候循序百福。
千千夢寐之外。喪明之痛。
復何言哉。襄禮未知何時
經營。下念區區之誠。未盡
仰達。而事當及時追弔。渠
亦薪憂。歷累月長臥
矣。方今始爲甫起。故如是
蹤跡相阻。落鄕孤陋之行
止。不言可知已。白紙二束汗呈。
以爲恕諒伏望耳。伊后身憂少
差。一番晉候爲計耳。餘。不備。伏惟。
壬申四月十八日。宗末 齊聲 拜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