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2년 9월 10일, 예안 下溪의 李晩協이 상대방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들끼리 아는 어떤 사건에 대해 위로의 말을 전하기 위해 영주 수도리[무섬마을, 섬계]의 朴齊淵(1807~1890)에게 보낸 편지
1872년 9월 10일, 예안 下溪의 李晩協이 영주 수도리[무섬마을, 섬계]의 朴齊淵(1807~1890)에게 보낸 편지이다.
오랫동안 문안하지 못하였지만 몹시 그리워하고 있음을 밝히고, 서리 내릴 계절에 한결 같이 잘 계시는지, 아들과 손자들은 잘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지나간 일을 다시 일깨울 필요는 없이 고통도 기쁨도 다 忘域으로 부쳐버렸지만 지난날을 생각하면 슬픈 탄식을 그만둘 수 없다고 자신들끼리 아는 어떤 사건에 대하여 위로의 말을 전하였다. 아마 3년에 전에 박제연의 장손인 勝喬(1848~1868)의 죽음을 두고 하는 말인 듯하다.
이어 자신은 궁벽한 곳에 칩거하면서 從兄과 함께 상대방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리워한다고 하며, 한 번 찾아가 대화하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하였다. 부탁할 말은 別紙에 써 보낸다고 하고, 南草 한 줌을 보낸다고 추신으로 밝혔다. 피봉이 있다.
발급자 李晩協(1823~?)의 자는 善休, 본관은 眞城이다. 草草庵 李泰淳의 손자로 彙遠의 아들이며, 愼庵 李晩慤의 종제이다. 1868년(고종5)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후 1870년에 임천서원의 훼철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강원도 高城으로 유배되었다.
수취자는 피봉의 '令座下'란 표기를 통해 한양에서 관직을 역임한 박제연으로 판단했다. 그의 자는 聖源, 호는 吾軒, 본관은 潘南이다. 어머니는 안동권씨이고, 부인은 의성김씨의 鶴峯 金誠一(1538∼1593)의 후예이다. 1840년 문과 급제했고, 병조참판, 의금부사 등을 역임했다. 문집으로 『오헌유고』가 있다.
『반남박씨 판관공파 세보』, 2001.,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