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0년 3월 12일, 金騏獻이 朴齊淵에게 편지를 전하는 일을 부탁하기 위해 보낸 편지
1870년 3월 12일 金騏獻(1798~1873)이 朴齊淵(1807~1890)에게 보낸 문안 편지이다.
둘째가 죽었다는 소식은 어찌나 참혹하고 놀라운지, 형께서 정을 두텁게 쏟으신 데다 객지에서 소식을 들으셨을 테니 어떻게 견디시는지 물었다. 자신은 이런 기막힌 일을 여러 번 겪어서 마음이 놀라고 상한 사람인데, 절친하고 가까운 정의가 있는 이의 경우에는 다만 이전에 당한 것과는 달라서 丹田이 녹아내렸을 것을 추측하여 상상할 수 있다고 하였다. 비록 그렇지만 무익한 슬픔으로 아까운 몸을 상해서는 안 되니까 부디 너그러운 마음을 객지 생활에 적용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요즘 봄 날씨가 고르지 않은데 객지에서 지내시는 체후가 만안하신지 물었다.
자신은 새해가 지나도록 바삐 지내다가 요즘 고향집으로 돌아왔는데, 온통 황량하여 빈 집에 홀로 앉았으니 살 수가 없으니 어쩌겠는가 하였다. 지난번에 柳謙叟 영감에게 보낸 편지는 이미 계획대로 되지 않았는데 혹시 당신의 상자에 머물러 있는가 묻고, 형편이 그래서이기는 하지만 이런 편지를 아무렇게나 전할 수는 없으므로, 이번 庭試에 겸수 영감 자질 중에 올라오는 이가 있으면 전하도록 하고 그렇지 않으면 형께서 내려오실 때에 가지고 와서 전해 주십사고 부탁하였다.
추신으로, 서울지역의 연사는 어떤지 묻고, 영남의 흉년든 형편은 말로 다할 수 없다고 하였다. 늦봄이 되면 굶어죽을 염려를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龍頭의 당신 형님 댁에는 별일 없지만, 거기도 이전에 집안에 재앙의 기운이 있어서 염려하며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발신인 金騏獻의 본관은 함창이고 자는 舜擧이며 호는 觀卜齋이다. 1823년 문과에 급제하고 승문원 정자와 사헌부 감찰, 정언 등을 지냈다.
수신인 朴齊淵의 자는 聖源, 호는 吾軒이고 본관은 潘南이다. 영주 수도리에 거주하였다. 1840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 참판을 지냈다. 문집으로 『오헌유고』가 있다.
편지 내용 중의 謙叟는 柳光睦(1813~?)의 자이다. 본관은 풍산이며 호는 蓉洲이다. 1843년 식년시 갑과에 장원급제하여 홍문관 교리를 거쳐 성균관 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피봉에 '朴參議 服座 執事'라고 쓴 것은 오헌의 둘째 아들 右陽(1831~1869)이 직전 해인 1869년에 세상을 버렸기 때문이다.
『潘南朴氏 判官公派 世譜』, 반남박씨 판관공파 종중, 2001.5.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