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0년 2월 1일, 沙月 李○○이 朴齊淵에게 새해 인사를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1870년 2월 1일 沙月의 李○○이 朴齊淵(1807~1890)에게 보낸 문안 편지이다.
"지난번에 당신이 영광스런 자리에 부임한 것은 어찌 예사로운 松茂栢悅 뿐이겠는가?"라고 하고, 마땅히 편지를 보내 축하하는 뜻을 표했어야 하지만 처지가 다르기가 더욱 멀어져 뜻대로 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영감은 곤궁하던 시절의 친구를 반드시 생각하지 않으시겠지만, 서울을 향하여 우러러보는 자기 마음은 그칠 때가 없다고 하였다. 해가 바뀌었는데 객지에서 영감의 체후가 더욱 복되신지 묻고, 왕의 은혜가 날마다 더하여 아직 옛 직함을 가지고 부임한 곳에 있을 때 자제가 곁에서 모시고 해를 넘겼는지, 본댁의 소식은 자주 듣는지 물었다. 연전에 당한 참혹한 일은 멀리서 쓰는 편지에 들 것은 아니지만, 參商처럼 멀리 떨어져 있어서 경조사에 인사를 못했으니 그리워하는 마음에다 부끄러움과 민망함도 이어진다고 하였다.
자신은 근년에 만나는 일이 갈수록 곤궁해져서 아내를 잃고 형제를 잃은 상복이 한 몸에 모여 있으니 외로운 이슬 같은 형편을 말로 다할 수 없는데, 쇠약한 모습까지 가련하고 한탄스럽다고 하였다. 매번 영감께서 하늘이 주신 건강함으로 늙은 연세에도 관직을 감당하는 것을 생각하면 옛 사람이 이른바 늙음을 알지 못한다는 사람인가 하여 부러워한다고 하였다. 만날 날이 쉽지 않으니 편지를 쓰면서도 더욱 쓸쓸하고 슬프다고 하면서, 언제쯤에나 남쪽으로 돌아오셔서 모습을 뵙고 이 마음을 다 말할까 하였다. 懋則이 따라가는 인편에 초초하게 안부를 여쭈면서 이 인편에 답장을 보내 주십사고 하였다.
추신으로, 李而述이 능참봉이 되는 것은 혹시 이미 올라갔는지 묻고, 서로 만나거든 안부를 전해 달라고 하였다.
而述은 李庭德의 자로 관향은 固城, 호는 笑山이다. 大溪 李周禎의 손자로 철종 6년 진사시에 입격하여 천거로 참봉이 되고 수직으로 돈녕부 도정이 되었다.
수신인 朴齊淵(1807~1890)의 자는 聖源, 호는 吾軒이고 본관은 潘南이다. 영주 수도리에 거주하였다. 1840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 참판을 지냈다. 문집으로 『오헌유고』가 있다.
『潘南朴氏 判官公派 世譜』, 반남박씨 판관공파 종중, 2001.5.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