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4년 6월 14일, 柳進璜이 朴齊淵에게 안부를 묻기 위해 보낸 편지
1864년 6월 14일 柳進璜이 서울의 朴齊淵에게 보낸 편지이다.
먼저 5월의 답장은 지금까지도 감사하며 상대의 안부는 舜亨의 서찰을 통해 잘 듣고 있다고 하였다. 無祿大夫로서의 서울 생활이 어찌 청량산에 모여 세상을 비웃고 한담이나 나누는 우리와 뜻이 같겠는가 하며 근래 어떻게 지내는지 묻고, 運勢가 성대한 때에 초야의 선비도 남김없이 발탁하는 때이니 뛰어난 자질과 재주로 반드시 크게 세상을 울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하였다. 자신은 묵은 더위 병이 심한 중에 廣坪의 査兄을 곡하였다 하고, 어찌 스스로 잘못한 것이 없는 병으로 백년의 수명을 재촉할 것이라 예상하였겠는가 하며 애통한 마음을 전하였다. 자신의 아들은 과거를 보러 서울로 가려다가 어제 廣坪의 병세가 위급하다는 전갈을 받고 가서, 成服 뒤에야 돌아올 것이니 이번 과거는 공부하지 못한 관계로 작파해야할 것이라 하였다.
또 상대방의 소식을 몰라 답답하다 하고, 우리 영남의 세 분 선생께 특별히 諡號를 개정한 일은 성대한 恩典이니 사문의 큰 다행이라 하였다.
추신으로 볶은 차를 조금 올린다 하고 피봉에는 美洞 金室이 足巾 하나를 보낸다고 덧붙였다.
편지 중에서 언급한 舜亨은 柳進徽(1814~1881)의 字로 호는 瓦西이다. 본관은 풍산이다. 1840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함경도 高原郡守 지냈다. 경술년 국치 때 자정 순국한 柳道發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발신인 류진황은 朴在純(1789~1849)의 사위이니 朴齊淵에게는 매부가 된다. 아버지는 臨汝齋 柳{氵+奎}(1730~1808)의 손자인 雲祚이다.
수신인 박제연의 자는 聖源, 호는 吾軒이고 본관은 潘南이다. 영주 수도리에 거주하였다. 1840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 참판을 지냈다. 문집으로 『오헌유고』가 있다.
『潘南朴氏 判官公派 世譜』, 반남박씨 판관공파 종중, 2001.5.
『慶北儒學人物誌』, 한국국학진흥원, 영남유교문화진흥원, 2008.4.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