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3년 10월 30일, 한양에 있는 朴齊淵(1807~1890)이 고향 영주 섬계[무섬마을]의 左陽(1826~1872)과 右陽(1831~1869) 두 아들에게 보낸 안부 편지
1863년 10월 30일, 한양에 있는 朴齊淵(1807~1890)이 고향 영주 섬계[무섬마을]의 左陽(1826~1872)과 右陽(1831~1869) 두 아들에게 보낸 안부 편지이다.
오랫동안 소식이 막혔던 차에 가족과 아이들, 대소가 등 안부를 두루 묻고, 객지에 있는 자신은 잘 지내며 泮村에 있는 벗들도 잘 있다는 안부를 전하였다. 屛山書院의 賜額을 청하는 상소에 대해 곧 回公할 가망이 있으니 이는 수백 년 동안 못했던 일로 영남 斯文의 큰 경사라며 기뻐하였다. 농사는 작년에 비해 어떤가 묻고, 穀價가 올랐는데 팔도 중에서 영남이 흉년을 면했다고 하지만 백성과 나라를 생각할 때 걱정이 적지 않다고 염려하는 마음을 표하고, 종을 곧 보낼 것으로 알지만, 木花 농사가 흉년인데 자신의 의복을 마련하는데 목화가 들어가니 몹시 걱정된다고 하였다.
여러 달 동안 서로 의지하고 지내던 聖發이 돌아간다고 하여 몹시 아쉽지만 歲前에 돌아온다고 하여 미리 기대된다고 하였다. 연전에 5兩을 차용하였는데 이번에 갚아야 하며, 성발이 집에 돌아가면 이 문제를 이야기할 것이므로 미리 알린다고 하였다. 두 손자는 공부를 잘 하는지 묻고, 婚期가 지났는데 아직 혼담이 없다고 염려하였다.
편지 내용의 '聖發'은 박제연이 아들에게 보낸 다른 여러 통의 편지에서는 '聖勃'이라고 표기했는데, 동일 인물로 짐작된다. 발급자는 미상이지만 서체나 내용으로 미루어 박제연으로 판단했다. 박제연의 자는 聖源, 호는 吾軒, 본관은 潘南이다. 영주 剡溪[수도리, 무섬마을] 출신으로 1840년 문과에 급제했고, 병조참판, 의금부사 등을 역임했다. 문집으로 『오헌유고』가 있다. 아들로는 左陽(1826~1872)과 右陽(1831~1869)이 있다.
『반남박씨 판관공파 세보』, 2001.,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