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855년 박제연(朴齊淵)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9+KSM-XF.1855.0000-20170630.068125700099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박제연, 박좌양, 박우양
작성시기 1855
형태사항 크기: 21.9 X 46.9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주 무섬 반남박씨 오헌고택 /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55년 박제연(朴齊淵) 서간(書簡)
1855년 7월 11일, 객지에 있는 아버지 박제연(朴齊淵)이 고향 영주 섬계[무섬마을]에 있는 아들에게 쓴 편지이다. 보리농사가 흉년인데 수해까지 입게 된 것을 매우 염려했고, 약 처방을 보내어 의원에게 의논하여 복용하라고 알려 주었다. 그 밖에 조정의 인사 소식도 전했고, 어제의 제사에 대한 망극한 마음도 언급하였다.
1차 작성자 : 김명자

상세정보

1855년 7월 11일, 객지에 있는 아버지 朴齊淵(1807~1890)이 고향 영주 섬계[무섬마을]에 있는 아들에게 쓴 안부 편지
1855년 7월 11일, 객지에 있는 아버지 朴齊淵(1807~1890)이 고향 영주 섬계[무섬마을]에 있는 아들에게 쓴 안부 편지이다.
大槪는 이미 지난번 편지에서 밝혔으니 다시 말할 것이 없다고 전제하고, 가족의 안부를 물었다. 지난달 그믐께 大小越浦가 傷損을 입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는데 사실인지 묻고, 만약 사실이라면 濱江의 농토가 모두 懷襄(큰 수해)에 들어갔을 것인데, 보리농사의 흉년을 만난 뒤에 다시 水災를 만났으니 앞으로의 일이 근심이라고 크게 염려하였다. 또 이번에 보내는 藥 처방은 北道의 의원이 지은 것으로 神效하다고 하니 받는 즉시 의원에게 다시 의논해서 복용하라고 하고, 聖吉이 아직 올라오지 않아서 생활해 나갈 방도가 없어 고민이라고 하였다. 이조판서병조판서가 다 遞差되어 이조판서洪鍾英, 병조판서李敦榮을 제수하였다는 조정 소식을 전하였다. 『哲宗實錄』에 의하면 1855(철종 6) 7월 1일에 이와 같은 인사가 이루어졌다고 나오므로, 이 편지는 이 해에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어제의 祭祀는 罔極하여 할 말이 없다.'고 했는데, 박제연의 조부인 成榦(1771~1836)의 기일이 7월 10일이므로 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발급자는 미상이지만 서체나 내용으로 미루어 박제연으로 판단했다. 박제연의 자는 聖源, 호는 吾軒, 본관은 潘南이다. 영주 剡溪[수도리, 무섬마을] 출신으로 1840년 문과에 급제했고, 병조참판, 의금부사 등을 역임했다. 문집으로 『오헌유고』가 있다. 아들로는 左陽(1826~1872)과 右陽(1831~1869)이 있다.
『반남박씨 판관공파 세보』, 2001.,
『哲宗實錄』,
1차 작성자 : 김승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55년 박제연(朴齊淵) 서간(書簡)

寄兒書。

大槩已悉於前書中。不必更煩。爲問
其間渾節若何。溸念更切。轉聞
來言。則昨月晦間。大小越浦。傷
損無餘云。未信其然。而若爾。則
濱江田庄。皆入於懷襄中矣。
年麥大無之餘。又此水災。來頭
經過。似爲沒策。實非細憂也。
彌憂漸至頭重。果無頉耶。
晝宵意念而已。此去藥錄。卽北
道醫所劑。而神效云。到卽更
議于醫家。試用爲可。聖吉
尙不上來。經過無計。甚悶。
吏判
皆遞。吏判洪種英
兵判李敦萬爲之。此後軍
祿。則似無慮耳。老主人月
初出去。貞洞尙未還耳。吾
姑無恙。泮主家亦一安。是可
幸也。忙不多及。
昨日祀事。罔極何言。
七月十一日。父 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