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2년 8월 10일, 金宗泰가 朴典籍에게 고양 사람의 일에 대한 회신을 요청하기 위해 보낸 편지
1852년 8월 10일에 梧溪의 金宗泰(1800~1883)가 朴典籍에게 보낸 문안 편지이다.
출발하실 때 만나지 못해서 지금까지 쓸쓸하다고 하며 객지에서 벼슬하시는 체후가 더 좋으신지 물었다. 자신은 8월에 비로소 집에 돌아왔는데, 형제 무사하고 아이들이 반갑게 맞으니 세상 재미가 무엇이 이보다 낫겠는가고 하였다. 다만 남은 피로로 떨쳐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그것도 형편인데 어찌하겠는가 하였다. 高陽 사람의 일은 과연 뜻과 같으신지, 이것을 믿고 아이들을 올려 보낼 계획인데 만약 인편이 있으면 회신을 보내 주십사고 하였다. 귀댁의 소식은 잘 알지 못하지만 다 평안하신 듯하고, 올해 농사도 흉년은 면했다고 하였다. 향중의 일도 상세히 들을 길이 없고 大享도 이미 지나갔는데 자신 쪽에서는 가서 참례한 이가 아무도 없다고 하였다.
추신으로, 담배[午草] 두 덩이를 보내드린다고 하였다.
발신인 金宗泰(1800~1883)의 본관은 豊山이고 자는 季鎭이며 호는 翠軒이다. 1850년 문과에 급제하고 홍문관 부수찬, 부교리, 승정원 동부승지를 거쳐 병조 참판을 역임하였다.
편지의 여백에 쓰인 '金參判 季鎭氏'라는 글은 발신인을 표시한 것이다. 후대에 문집이나 간찰집 등을 편집할 목적으로 자료를 분류하기 위하여 附記한 것인 듯하다.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