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8년 11월 23일, 姜必臣이 朴齊淵에게 근황을 전하고 망아지를 보내기 위해 보낸 편지
1848년 11월 23일 姜必臣이 사돈인 朴齊淵(1807~1890)에게 보낸 답장로 근황을 전하며 망아지를 보낸다는 내용이다.
근래에 안부가 막혀 슬픈 심기가 견디기 어렵던 즈음에 아들이 돌아와 보내주신 서찰을 받고 서리 내리는 계절에 당상영감님의 안부에 손절됨이 없음과 어른을 모시며 복을 입은 안부가 잘 지탱하고 있음을 알았으며, 아드님 형제도 잘 모시고 공부 잘 하고 있음을 알고 위안이 되며 향해가는 마음 가누기 어렵다고 인사 하고 있다. 발신인은 가문이 불행하여 지난 17일 伯從 令公의 喪事를 당해 이미 棟梁이 무너졌으니 비통함을 다시 어찌 말씀드리겠냐고 하였다. 자신도 毒感으로 열흘 남짓 고생을 하다가 지금 겨우 起動은 하지만 아직도 어릿어릿할 뿐이라 스스로도 고민된다고 근황을 전한다. 어린 것들은 탈 없이 한 두 해만 견디고 지나면 이 세상에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니, 어찌 '不食之報' 즉 '父祖의 陰德으로 자손이 잘 되는 報應'이 없겠냐고 하였다. 이 표현은 이 해 1848년 6월에 左陽의 아내인 姜必臣의 딸이 1남 1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4월에 태어난 외손자 승교가 젖먹이였다. 작은 망아지를 끌어 보낸다고 하고 추신으로 아드님, 즉 사위에게는 바빠서 답신을 못 쓰니 한스러운 마음을 전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발신인 강필신은 박제연의 맏아들 左陽의 장인으로 봉화 法田에 살았으며, 편지에서 말한 백종영공은 이 해에 세상을 떠난 海隱 姜必孝(1764~1848)를 가리킨다.
수신인 박제연의 자는 聖源, 호는 吾軒이고 본관은 潘南이다. 영주 수도리에 거주하였다. 1840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 참판을 지냈다. 문집으로 『오헌유고』가 있다.
『潘南朴氏 判官公派 世譜』, 반남박씨 판관공파 종중, 2001.5.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