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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4년 박제연(朴齊淵)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9+KSM-XF.1844.0000-20170630.06812570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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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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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박제연, 박재순
작성시기 1844
형태사항 크기: 25.8 X 50.1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주 무섬 반남박씨 오헌고택 /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44년 박제연(朴齊淵) 서간(書簡)
1844년 3월 27일, 관직생활을 하는 朴齊淵(1807~1890)이 영주 섬계[무섬마을]의 아버지 朴在純(1789-1849)에게 보낸 편지이다. 고향 소식에 위로가 된다고 했고, 본인은 다음 달 안으로 고향으로 내려갈 것이라고 했다. 영주 사람 대여섯이 과거를 봤는데 4명이 참방했으나 중현(仲賢)은 불합격하여 통탄스럽고, 감호(鑑湖) 좌랑 댁에서도 과거본 이가 불합격했다고 전했다.
1차 작성자 : 김명자

상세정보

1844년 3월 27일, 朴齊淵(1807~1890)이 영주 섬계[무섬마을, 수도리]의 아버지 朴在純(1789~1849)에게 보낸 문안 편지
1844년 3월 27일, 朴齊淵(1807~1890)이 영주 섬계[무섬마을]의 아버지 朴在純(1789~1849)에게 보낸 문안 편지이다.
계속되는 인편에 소식을 들으니 오래 헤어져 있는 마음이 조금 위로된다고 하고, 봄이 저무는데 할머니와 할머니를 모시는 가운데 부모님의 체후가 어떠하신지, 이 형제는 탈 없이 공부 잘하는지를 물었다. 젖먹이의 慘慽은 다 천명이라 하겠지만, 세상에 2년 있는 동안에 아버지가 있었으나 아이는 얼굴도 알지 못하였을 것이고 끝내 살리지 못하였으니 아이는 몰랐다 하더라도 사람으로서의 이치에 관계된 일이므로 매우 한스럽다고 하였다.
자신은 여전히 지내고 있으나 객고가 여러 해 되니 너무나 지루하여 다음 달을 목표로 하여 반드시 돌아가려 한다 하고, 栗亭 察訪 자리는 이미 양여하기로 한 듯하나 어떻게 결정되든 진퇴는 정해질 것이라고 하였다.
이번에 영주 사람 대여섯이 과거를 봤는데 仲賢만 빠지고 權宗彦, 宋泰仁, 權象基, 朴東濟 등 네 사람은 참방하였으니, 중현으로서는 더욱 통탄할 일이라고 하였다. 德純은 내려갈 때에 데리고 갈 계획이며, 鑑湖 좌랑 댁에서도 과거본 이가 불합격했으니 운수라고 하였다.
발신인 박제연의 字는 聖源, 號는 吾軒, 본관은 潘南이다. 어머니는 안동권씨이고, 부인은 의성김씨의 鶴峯 金誠一(1538∼1593)의 후예이다. 문과 급제하여 병조참판, 의금부사 등을 역임했다. 문집으로 『오헌유고』가 있다.
수신인 朴在純(1789-1849)의 자는 孟文, 본관은 潘南이며, 가선대부 호조 참판에 증직되었다.
『반남박씨 판관공파 세보』, 2001.,
1차 작성자 : 김승균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44년 박제연(朴齊淵) 서간(書簡)

父主前 上白書。
連續便。伏承音候。稍慰久離
之情。而信後更阻。春事已暮。紆鬱
倍切。伏未審近辰
大母主氣力保免諐損。
侍中二分體候連向萬安。大小都候一
樣平善。哥兄弟無恙穩課否。伏慕
區區不任下情。乳下化去之慽。寧欲無言。
莫非命也。而但所恨者。在世二年。有
父。而渠未知顔面。畢竟不救致此。渠雖
無知。亦係人理極處。恨奈之何。子。眠食
幸保。而積歲客苦。已極支離。方以來
月凖的。成不成間當決歸。而栗郵似已
屬讓與此窠。左右間已斷。則進退亦定矣。監
倉可謂無前公務。吾鄕五六人觀光。
仲賢獨漏。權宗彦宋泰仁權象基
朴東濟四人嵬參。爲仲賢地。尤極痛歎。
德純來初。當出番。而姑爲挽執。下去時率
歸伏計耳。鑑湖佐郞長平安。而
其家科儒亦見屈。數也奈何。餘。適因上村
便。暫此上白。不備。伏惟下鑒。上白是。
甲辰三月二十七日夜。子 齊淵 上白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