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4년 3월 27일, 朴齊淵(1807~1890)이 영주 섬계[무섬마을, 수도리]의 아버지 朴在純(1789~1849)에게 보낸 문안 편지
1844년 3월 27일, 朴齊淵(1807~1890)이 영주 섬계[무섬마을]의 아버지 朴在純(1789~1849)에게 보낸 문안 편지이다.
계속되는 인편에 소식을 들으니 오래 헤어져 있는 마음이 조금 위로된다고 하고, 봄이 저무는데 할머니와 할머니를 모시는 가운데 부모님의 체후가 어떠하신지, 錫이 형제는 탈 없이 공부 잘하는지를 물었다. 젖먹이의 慘慽은 다 천명이라 하겠지만, 세상에 2년 있는 동안에 아버지가 있었으나 아이는 얼굴도 알지 못하였을 것이고 끝내 살리지 못하였으니 아이는 몰랐다 하더라도 사람으로서의 이치에 관계된 일이므로 매우 한스럽다고 하였다.
자신은 여전히 지내고 있으나 객고가 여러 해 되니 너무나 지루하여 다음 달을 목표로 하여 반드시 돌아가려 한다 하고, 栗亭 察訪 자리는 이미 양여하기로 한 듯하나 어떻게 결정되든 진퇴는 정해질 것이라고 하였다.
이번에 영주 사람 대여섯이 과거를 봤는데 仲賢만 빠지고 權宗彦, 宋泰仁, 權象基, 朴東濟 등 네 사람은 참방하였으니, 중현으로서는 더욱 통탄할 일이라고 하였다. 德純은 내려갈 때에 데리고 갈 계획이며, 鑑湖 좌랑 댁에서도 과거본 이가 불합격했으니 운수라고 하였다.
발신인 박제연의 字는 聖源, 號는 吾軒, 본관은 潘南이다. 어머니는 안동권씨이고, 부인은 의성김씨의 鶴峯 金誠一(1538∼1593)의 후예이다. 문과 급제하여 병조참판, 의금부사 등을 역임했다. 문집으로 『오헌유고』가 있다.
수신인 朴在純(1789-1849)의 자는 孟文, 본관은 潘南이며, 가선대부 호조 참판에 증직되었다.
『반남박씨 판관공파 세보』, 2001.,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