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2년 10월 15일, 柳進璜이 며느리를 맞이하는 예식에 참석하지 못함을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1842년 10월 15일 柳進璜이 성명을 밝히지 않은 妻叔에게 보낸 편지로 며느리를 맞이하는 婚禮에 참석하지 못한 미안함을 담고 있다.
오랫동안 뵙고 이야기 나누지 못해 그리움만 간절한 가운데 겨울 추위가 시작되니 삼가 聘祖母主의 주무시고 드시는 등의 안부와, 어버이를 모시는 여러분의 안부, 그리고 조카들과 사촌 형제들의 안부에도 신의 도움이 있을 것이라고 인사 하였다. 신부의 婚禮는 잘 치루셨을 것이니 재미가 불어남을 경하 드린다고 하며 예식의 자리는 과연 감당하기가 容易했는지 묻고 달려가는 그리움 가눌 수가 없다고 하였다. 발신인은 70이 넘으신 부친의 精力은 근근이 큰 손상은 면하고 지내시는데, 叔父께서 편찮으시어 겨우겨우 날을 넘기고 있으니 걱정스러워 다른 번거로운 말씀을 드릴 수가 없다고 하였다. 딸아이의 新行은 수 일 전 꾸려 보냈는데, 길이 먼데 말은 잔약하여 걱정이 적지 않다고 하였다. 이번에 현숙한 며느리를 맞이하는 좋은 날에 여러 가지 일들에 메여서 참석하지 못했다고 하며 부득이 추후에 아내와 함께 나아갈 것이라 하였다. 나머지는 등불 아래서 소란스러워 격식을 갖추지 못했다며 마무리 하고 있다. 추신으로 북어 10마리를 소략함도 잊은 채 올린다고 덧붙였다.
발신인 류진황은 朴在純(1789~1849)의 사위로 吾軒 朴齊淵에게는 매부가 된다.
수신인 처숙은 朴在經(1803~1858)을 가리킨 듯하다.
편지 뒷면에는 1835년 11월 27일에 류진황이 丈人 朴在純에게 안부를 묻고 서울에 머무는 박제연의 편지를 받은 소식을 전한 편지가 배접되어 있다.
내용으로는 먼저, 이번처럼 소식이 막힌 적이 없어 답답한 마음 억누르기가 어려웠다고 하며 聘祖父님 두 분이 만강하신지, 어른을 모시는 수신인의 안부는 편안한지, 各房의 모든 분들이 안부도 고루 좋은지 묻고 있다. 발신인은 어버이가 편찮으시고 자신도 병이 점점 더 심해진다고 하며, 가장 심했던 己未年 胡感보다 지금의 독감이 더 심하다며 병의 지독함을 표현 하였다. 누이의 혼사를 尙州 安正言 큰댁으로 정하여 행하였는데 凡節이 바라던 바에 흡족하지만 어버이가 세상을 떠나서 눈 닿는 것마다 견디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아드님 즉 박제연의 서찰을 받고 초4일 延客하던 날에 편안했음을 알았는데, 어제 저녁에 小令 三從兄이 서울에서 돌아와서 또 다시 서찰을 받았다고 전하고, 泮主家가 不安하여 客中에서 또 客이 되었다며 박제연의 힘든 상황을 알리며, 泮의 長은 누가 담당하는지 아직 모르고, 과거 날짜도 결정 되지 않았다고 전한다. 아직까지 몸을 빼낼 여가가 없기 때문에 나아가 뵙지 못했다고 하며, 지금도 새신랑을 초대하는 것이 언제쯤 일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어 뵈러 가는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고 하였다. 至親의 喪禮 때문에 객들이 소란스러워 격식을 갖추지 못했다고 마무리하고, 추신으로 새 달력 한 건을 올린다고 덧붙였다.
1835년 편지로 박제연이 급제하기 전에 한양서 고생하며 공부하던 상황과 온 집안에서 과거에 관심을 축원하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수신인 박재순은 류진황의 장인이다. 오헌 박제연의 아버지로 자는 孟文이며 호조 참판에 증직되었다.
『潘南朴氏 判官公派 世譜』, 반남박씨 판관공파 종중, 2001.5.
1차 작성자 : 김승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