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1833년 이한정(李漢鼎) 외 2인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9+KSM-XF.1833.4792-20170630.037225700153
URL
복사
복사하기

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한정, 이의상, 이한응
작성지역 경상북도 봉화군
작성시기 1833
형태사항 크기: 27.8 X 37.9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양 주곡 한양조씨 옥천종택 /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33년 이한정(李漢鼎) 외 2인 서간(書簡)
1833년 1월 10일에 이한응 외 2명이 용회 형에게 고초를 겪은 것을 위로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이 심문을 당한 일을 언급하며 심문을 하였지만 감옥에 갇히거나 형문을 당하지 않아 다행스럽다고 하며 상대를 위로하고 있다. 이어서 당신을 찾아뵈려고 하였으나 자기 집의 여러 가지 일과 당신의 이사로 그 계획을 이루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하였다. 끝으로 다시 한 번 상대를 위로하고 돈 1민을 보냈다.
1차 작성자 : 김인호

상세정보

1833년 1월 10일에 이한정(李漢鼎), 이의상(李宜相), 이한응(李漢膺) 등이 고초를 겪고 있는 용회(用晦) 형을 위로하기 위해 보낸 편지
1833년 1월 10일에 이한정(李漢鼎), 이의상(李宜相), 이한응(李漢膺) 등이 고초를 겪고 있는 용회(用晦) 형을 위로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고초를 겪고 있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있다. 당신께서 한 달이 넘게 고생을 겪은 뒤에 또한 이사를 가는 수고까지 더하게 되어 근심스럽다고 하고 있다. 또한 상대방이 겪은 재판과 관련된 일을 언급하고 있다. 추문을 당하였지만 형문을 당하거나 옥에 갇히는 화는 면하였으니 이 문제가 점점 깨끗이 씻기게 될 것이라고 하고 있다. 과거의 군자들 또한 무고에 빠진 일이 많았지만 평상시와 같이 행동하고, 감옥에 갇혀도 자기 집에 있는 것과 같이 여기고, 칼과 차꼬를 차고 있어도 옷을 입은 것과 같이 여겼다고 하며 상대방을 위로하고 있다. 이어서 자신은 학문이 부족하여 학문에 힘쓰고 있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를 잘 모시는 당신을 생각하면 항상 마음속으로 탄복했다고 하며 형께서 잘 지내신다는 것을 자신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이니 이러한 마음을 용납해주시고 잊지 않으시기를 바란다고 하고 있다. 자신들이 형을 만나러 가고 싶으나 둘째 아들의 병이 심각하고 날씨가 춥고 집안 재물이 넉넉하지 못하여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 새해에 찾아뵈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사를 하게 되어 그 계획을 이루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며 탄식하고 있다. 끝으로 다시 한 번 당신이 겪고 있는 시비는 곧 스스로 잠잠해 질것이니 마음과 정신을 바로잡고 밥을 잘 드시고 몸을 아끼시길 바란다며 편지를 마치고 있다. 추신에는 여러 노형(老兄)들에게 각각 편지를 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하고 돈 일민(一緡)을 객지에 계신 당신에게 보낸다고 하고 있다.
발신자 중 한명인 이한응(李漢膺, 1778~1864)은 본관 진성(義城), 자는 중모(仲模), 호는 경암(敬庵)이다. 봉화(奉化) 녹동(鹿洞)에 세거하고 있었으며, 이제겸(李濟兼)의 증손이고 아버지는 이진현(李鎭鉉)이다.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 힘썼으며 경학이 뛰어나 청량산 오산당(吾山堂) 강회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경암집(敬庵集)』, 『계재잡록(溪齋雜錄)』이 있다.
이 편지는 진성이씨와 한양조씨가 교류를 살펴볼 수 있는 편지이다. 향촌에서 사대부들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서로를 도우면서 자기 가문의 권위는 물론 향촌 사회를 계속 운영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인호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33년 이한정(李漢鼎) 외 2인 서간(書簡)

用晦兄旅榻。呈納。
自有兄行。雖不能相問。所以向注者。何尝食
息已也。跨朔喫苦之餘。又添轉移之勞。
旅中氣度。能無大損。已經推卞。又免刑訊縲
絏之厄。禍機。漸有湔白之望否。世道之変。無事
不有。而未有若今日之極者。況久離堂闈情
事。一培難堪。尤爲之掖腕憫慮。雖然古之君子。橫
羅禍網者。何限。而莫不以素行處之。處囹圄
若齋閤。受桁楊若冠服。不以倘來擾我寶藏。
吾人定力。雖不敢遽及。亦不可不學也。未知已勉
力否。每候尊府。見以理自遣。榮衛無減。而惟
慮兄過憂。未嘗不心服感歎。而此最兄樂
聞者。幸體此無忘。如何。僕等。向時。離庭之日。以聞之
後時。不得拚別。其後。卽謀兒輩奔問。而次豚之
病。跨歲濱死。又各縮於寒威。坐於乏資。延拖未
諧。而歲初則另圖起送之際。兄又移于彼。則此
計之遂。不已難乎。殊非情摯相救之義。愧歎
何極。第天地間。公是非。自有殄滅他不得。豈有終
受搆誣。不能卞白之理。惟以是立定心神
加餐愼嗇。
是望是望。自
餘鎖鎖。非遠
書可旣。不備
狀禮。
癸巳元月十日。漢鼎 宜相 漢膺。 拜。

同赴諸老兄
次。何如。乏楮
不各幅。爲致
此意耶。
一緡銅。遙助
客味。愧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