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3년 1월 10일에 이한정(李漢鼎), 이의상(李宜相), 이한응(李漢膺) 등이 고초를 겪고 있는 용회(用晦) 형을 위로하기 위해 보낸 편지
1833년 1월 10일에 이한정(李漢鼎), 이의상(李宜相), 이한응(李漢膺) 등이 고초를 겪고 있는 용회(用晦) 형을 위로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고초를 겪고 있는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있다. 당신께서 한 달이 넘게 고생을 겪은 뒤에 또한 이사를 가는 수고까지 더하게 되어 근심스럽다고 하고 있다. 또한 상대방이 겪은 재판과 관련된 일을 언급하고 있다. 추문을 당하였지만 형문을 당하거나 옥에 갇히는 화는 면하였으니 이 문제가 점점 깨끗이 씻기게 될 것이라고 하고 있다. 과거의 군자들 또한 무고에 빠진 일이 많았지만 평상시와 같이 행동하고, 감옥에 갇혀도 자기 집에 있는 것과 같이 여기고, 칼과 차꼬를 차고 있어도 옷을 입은 것과 같이 여겼다고 하며 상대방을 위로하고 있다. 이어서 자신은 학문이 부족하여 학문에 힘쓰고 있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아버지를 잘 모시는 당신을 생각하면 항상 마음속으로 탄복했다고 하며 형께서 잘 지내신다는 것을 자신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이니 이러한 마음을 용납해주시고 잊지 않으시기를 바란다고 하고 있다. 자신들이 형을 만나러 가고 싶으나 둘째 아들의 병이 심각하고 날씨가 춥고 집안 재물이 넉넉하지 못하여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 새해에 찾아뵈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사를 하게 되어 그 계획을 이루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며 탄식하고 있다. 끝으로 다시 한 번 당신이 겪고 있는 시비는 곧 스스로 잠잠해 질것이니 마음과 정신을 바로잡고 밥을 잘 드시고 몸을 아끼시길 바란다며 편지를 마치고 있다. 추신에는 여러 노형(老兄)들에게 각각 편지를 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하고 돈 일민(一緡)을 객지에 계신 당신에게 보낸다고 하고 있다.
발신자 중 한명인 이한응(李漢膺, 1778~1864)은 본관 진성(義城), 자는 중모(仲模), 호는 경암(敬庵)이다. 봉화(奉化) 녹동(鹿洞)에 세거하고 있었으며, 이제겸(李濟兼)의 증손이고 아버지는 이진현(李鎭鉉)이다.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 힘썼으며 경학이 뛰어나 청량산 오산당(吾山堂) 강회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저서로는 『경암집(敬庵集)』, 『계재잡록(溪齋雜錄)』이 있다.
이 편지는 진성이씨와 한양조씨가 교류를 살펴볼 수 있는 편지이다. 향촌에서 사대부들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서로를 도우면서 자기 가문의 권위는 물론 향촌 사회를 계속 운영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