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3년 8월 21일에 권대긍(權大肯)이 청탁한 일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
1833년 8월 21일에 권대긍(權大肯)이 청탁한 일과 관련하여 보낸 편지이다.
먼저 상대방이 보낸 편지를 통해 안정(顔丁)의 관건(冠巾)을 하고 있던 당신이 이미 평상시의 예를 회복하였고 또 고질병도 회복하였다고 하니 위로가 된다고 하고 있다. 안정은 노나라 사람으로 어버이가 죽음에 장사를 잘 지낸 사람이다. 이 글에서는 상을 지내고 있던 상대방을 비유한 것이다. 이어서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기의 어머니는 몸이 불편하여 마음 졸이고 근심하고 있으며 형은 3년상을 마치고 계방의 직위를 회복하였고 자신도 춘방의 직역을 회복하여 위로가 된다고 하고 있다. 계방(桂坊)은 세자익위사의 별칭이고, 춘방(春坊)은 세자시강원의 별칭이다. 끝으로 청탁한 일과 관련된 답변을 하고 있다. 종씨의 행차는 해마다 이루어졌는데 보는 옆에서 사람도 슬픈데 원한을 품고 있는 형에게 있어서는 어떠하겠냐고 하고 있다. 자신이 힘이 미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주선해 볼 것이니 우선은 묵묵히 기다려 달라고 하고 있다.
발신자 권대긍(權大肯, 1790~?)은 본관 안동(安東)이고 자는 계구(季構)이며, 아버지는 권익, 할아버지는 강화부유수를 지낸 권엄(權𧟓)이다. 서울에서 거주하였다. 1823년(순조 23) 계미 정시 을과 1위로 합격하였다. 『승정원일기』를 살펴보면 1832년 윤9월에 사간원 정언 직을 그만두게 되는데 이는 편지의 내용을 살펴보았을 때 집안에 상사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후 1833년 3월 3일 다시 사간원 정언에 복직하고 그 해 7월 2일에 세자시강원 정4품 관직인 필선(弼善)에 임명된다. 필선은 보통 사헌부 집의나 사간원 사간이 겸임한다. 수신인은 시기적으로 살펴보았을 때 조언규(趙彦奎, 1799~1838)로 추측된다. 생부는 조필복(趙必復)이고 조일복(趙日復)의 양자가 된다. 자는 경오(景五)이고 부인은 재령이씨 이상동(李相東)의 딸이다.
이 편지는 한양조씨 가문이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 중앙 정계에 인물에게 청탁하는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는 자료이다. 향촌의 사대부들은 상소나 개인적인 청탁을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관철시키고 공론을 형성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