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6년 10월 24일 鄭象晉이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어버이의 기일과 겹쳐 고모의 이장에 참여하지 못함을 전하기 위해 趙 生員에게 보낸 편지
1826년 10월 24일 鄭象晉(1770∼1847)이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어버이의 기일과 겹쳐 고모의 이장에 참여하지 못함을 전하기 위해 趙 生員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의 서두에 신명과 하늘에 죄를 얻어 화가 선롱에 미쳤으니, 분주하게 슬프고 허둥댐이 밤낮으로 죽기를 바랐으나 그럴 수 없었다고 시작한다. 그러던 중에 편지를 보내주신 것에 대해 감사함을 전하고, 또한 편지를 받은 뒤로 여러 날이 지난 가운데 다시 경전공부 하시는 일상생활이 한결같이 보위되시고, 아들이 곁에서 모시는 범절이 연달아 좋으신지 어떤지를 물어보았다.
이어서 자신의 근황을 전하는데, 우선 답장을 쓰는 것을 아직 조금도 펴지 못했고, 면례를 거행하는 것을 이제 겨우 지냈다고 하였다. 이곳은 둘째 누이가 늘그막에 서로 의지하던 나머지에 죽었고, 한 손부는 여러 해 앓던 병에서 요절하였다고 하면서 가지가지 좋지 않은 회포를 스스로 가눌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고모의 이장이 마침 이때 있다는 것을 들었으니, 일월산 기슭을 바라봄에 다만 절로 눈물이 떨어진다면서 이에 고모의 이장이 어버이의 기일과 겹쳐서 정성을 이룰 길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편지의 끝에는 인연이 닿아 받들어 뵐 수 있는 것도 그 기회를 잃었으니, 바로 이같이 평소에 왕래하는 것이 마치 새벽하늘에 별이 듬성듬성 있는 때와 같다고 하였다. 편지를 쓴 뒤에 또 거듭 존문을 받으니 돌아보시는 지극한 뜻을 감히 잊을 수 없다고 하였다.
발급인 정상진은 자가 日晉이고, 호는 石坡, 본관은 晉陽이며, 출신지는 상주군 외서면이다. 鄭經世의 7세손이며, 부친은 鄭宗魯이다. 어려서부터 성리학에 정통하고 主理論을 主氣論과 절충시킨 학자로 유명한 부친의 가르침을 받아 經史子集에 능통하였다.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자신을 수양하는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부친의 유고인 『昭大名臣言行錄』과 『立齋集』을 정리하였다. 宣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차 작성자 : 김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