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6년 8월 18일, 鄭學淵이 선조 조덕린의 신원회복과 관련된 일의 전망이 밝지 않다는 내용이 담겨 있으며, 用晦 兄이 돌아가 자세히 말해줄 것이라고 전하기 위해 보낸 편지
1826년 8월 18일, 丁學淵(1783~1859)이 영양 주곡에 보내는 답장 편지이다. 선조 조덕린의 신원회복과 관련된 일의 전망이 밝지 않다는 내용이 담겨 있으며, 用晦兄이 돌아가 자세히 말해줄 것이라고 했다.
편지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봄에 관에 머물렀던 것도 한 번의 기이한 인연이었으나 소식이 그대로 막혀 그리움이 다만 절실했다고 했다. 상대방이 보내주신 편지를 받아서, 삼가 가을에 어른을 모시는 건강이 만 가지로 복됨을 알게 되었고, 하물며 부모님의 병이 나은지 여러 날이 되었다고 하니, 지극한 위로와 축하를 이기지 못하겠다고 했다. 편지가 온 뒤에 이미 보름이 되었는데, 아버님의 건강은 다시 회복되었는지 매우 염려스럽게 물었다.
이어 본인의 소식을 전했다. 본인은 어른을 모시는 일은 가을 이래 조금 편안하나 막 무더워지려고 할 때 거의 편안한 날이 없었으니, 이미 매우 녹초가 되었고 자부의 병은 점점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매우 애를 태우고 있다고 했다.
선조에 관한 일은 이 마음이 혹 생각하지 않겠습니까만, 여론이 촉박하여 끝내 온화한 형세가 없다고 해서 매우 고통스러운 심정이라고 했다. 멀리 가서 서글피 홀로 돌아오니 돌아가는 사람의 마음은 상상할 만하다고 했다. 또한 선조의 일이 잘 되지 않아 한양의 친구들은 울분으로 병이 된다고 했다. 자세한 것은 用晦兄이 말로 전할 것이라고 하며 답장 편지를 끝맺었다.
정학연의 자는 穉修, 호는 酉山, 본관은 나주이다. 아버지는 丁若鏞(1762~1836)이고, 繕工監役을 역임하였다. 수급자인 주곡 한양조씨의 선조 趙德鄰은 당쟁의 폐해 및 서원의 남설을 반대하는 상소로 두 번의 유배를 가게 되었고, 관직도 삭탈 당했다. 조덕린의 신원은 후손들의 숙원 사업으로 이를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한양조씨는 중앙의 정계의 여러 인사들과 접촉하였다. 정학연과도 이러한 연유로 교유하게 되었다.
1차 작성자 : 김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