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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1년 강필효(姜必孝)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9+KSM-XF.1821.4792-20170630.03722570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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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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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강필효
작성지역 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
작성시기 1821
형태사항 크기: 23 X 37.9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양 주곡 한양조씨 옥천종택 /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21년 강필효(姜必孝) 서간(書簡)
1821년 6월 15일에 강필효(姜必孝)(1764∼1848)가 한양 조씨 측에 보낸 편지이다. 안부를 주고받고, 상대 집안에서 그들의 조상의 문집인 『만곡문집(晩谷文集)』을 간행하게 된 일을 축하하며, 자신의 종제의 장례에 관해 일정 등을 알리고 아울러 상대측에 가지 못하는 사정 등을 알리고자 했다.
1차 작성자 : 김동현

상세정보

1821년 6월 15일, 海隱 姜必孝가 안부를 주고받고 상대측 『晩谷文集』 간행을 축하하며, 자신이 겪은 喪制 소식을 전함과 아울러 상대측에 가지 못하는 사정을 알리고자 注谷의 漢陽趙氏 측에 보낸 편지
1821년 6월 15일에 海隱 姜必孝(1764∼1848)가 안부를 주고받고 상대측 『晩谷文集』 간행을 축하하며, 자신이 겪은 喪制 소식을 전함과 아울러 상대측에 가지 못하는 사정을 알리고자 注谷의 漢陽趙氏 측에 보낸 편지이다.
처음, 國喪에 대해 이는 온 나라 臣民들의 슬픔이라고 서두를 떼었다. 지난 달 轉遞 인편을 통해서 상대의 편지를 받아 위로되었다고 하고, 이어서 상대, 상대의 아들, 洞中의 순서로 안부를 물었다. 또한 상대측에서 『만곡집』을 간행한 것에 대해 축하하였다. 자신의 경우는 그럭저럭 지내고는 있지만, 4월 말 경 돌림병 때문에 聖虎 아우의 상을 당했고, 그의 장례를 이달 17일로 계획하였음을 알렸다. 자신은 뜻밖에 당한 이 일 때문에 온갖 마음이 재처럼 사그라져서 집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하였다. 그래서 以凝 형님 등과 유람 갈 기약도 지키지 못했고, 상대측 집안 행사에도 참여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래서 상대측에 가 보는 일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하였다. 예전에 상대측 사람들과 경주 玉山으로 유람 갔던 일을 늘 그리워하고 있다는 말도 전했다.
추록에는 從弟의 장례 기일을 급하게 정하게 되어 상대측에게 미리 알리지 못했다고 하면서, 이미 장사를 치른 이후지만 그래도 글 한 편 지어 고인을 영결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또한 이응 형이 상대 고을에 있다고 들어서 그에게 보낼 답장도 함께 부친다고 하였다.
본문에서 처음 언급된 '國喪'은 正祖의 正妃이자 純祖의 王大妃인 孝懿王后 金氏(1754~1821)의 상을 말한다.
'晩谷'은 趙述道(1729~1803)의 호이며, 玉川 趙德鄰의 손자이다. 『晩谷文集』은 조술도의 조카 趙居信(1749~1826)이 그의 유문을 수습하고 立齋 鄭宗魯의 교감을 거처 1821년에 간행되었다. 총 9책 17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종로의 序文 및 定齋 柳致明, 晦屛 申體仁, 조거신 등이 쓴 제문이 실려 있다. 본문에서 『만곡문집』 간행을 축하하는 내용을 통해 이 편지의 수취인은 조거신 또는 그와 비슷한 항렬의 인물이거나 바로 아랫대의 인물로 추정할 수 있다.
본문에 등장하는 '以凝 尊兄'은 金羲壽(1760~1848)로 본관은 義城, 자는 以凝, 호는 東園이다. 副護軍을 지낸 浪皤 金鎭林(1802~1886)의 生父이다. 1809년 增廣試 생원에 입격했다. 류치명이 묘지명을 지었다.
이 편지의 발급인인 姜必孝는 본관은 晉州, 자는 仲順, 호는 海隱이며, 초명은 世煥이다. 아버지는 , 어머니는 眞城李氏 重延의 딸이다. 姜酇의 후손으로 尹光紹의 문인이다. 봉화 法田 출신이다. 1803년 遺逸로 천거되어 順陵參奉을 지낸 이후 造紙署別提, 敦寧府都正 등을 역임하였다. 저작으로 『古聖賢考經錄』, 『近思續錄』, 『素溪會話錄』, 『夕惕錄』, 『四遊錄』, 『經書考異』 등이 있고, 문집인 『海隱遺稿』가 있다. 편지 본문에서 자신을 '功服弟'라고 표현한 것은 종제의 상을 당했기 때문에 大功服의 상복을 입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1차 작성자 : 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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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텍스트

1821년 강필효(姜必孝) 서간(書簡)

國哀普慟。前月因遞便。拜承
惠書。披慰如對展多少。第以稽謝爲
悚。卽伏惟比炎
兄靜几有相。胤侍侍履衛勝。洞中僉候
平安。區區慰仰。且溸之至。
晩翁遺稿。聞已設廳鋟榟。此是斯文大
事。倘非僉尊尊衛之誠。何能乃爾耶。遠
切欽歎罔已罔已。服弟。親側厪遣。而四月之末。
以輪氣奄哭聖虎弟。此弟所存。兄亦相悉。
儒雅豈弟之容。文行兼備之士。何處更得來
耶。其爲慟惜。不但喪余而已。以今十七日將謀
窆事。蓋棺事定。萬事餘痛。奉下情緖。尤
無以爲懷。天乎奈何。所遭意外如此。百念都
灰。山外一步未易出。以凝尊兄日升尊査擬遊
蓋久。經歲不踐約。貴中又有事之日。不可
恝然。而姑未抽出。歉歎尤何。聞迄功尙遠云。可
徐圖耶。深居窮巷。閴寂無晤言。每曰想年前
東都玉山之遊。衰年轉益無繼此者。時入夢想。慰
悵交幷。且記行文字。至今不相看。尤深泄鬱。都留心
照。憑遞
略候。不備
狀例。
辛巳 六月 十五日。功服弟 姜必孝 拜狀。

從弟山地
猝定。未
及啓告。而
知舊如吾
兄。想不靳
一字相訣。
雖過後。可
相念否。
切企切企。
兄聞在
鄕中。謝書
亦幷付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