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1년 6월 15일, 海隱 姜必孝가 안부를 주고받고 상대측 『晩谷文集』 간행을 축하하며, 자신이 겪은 喪制 소식을 전함과 아울러 상대측에 가지 못하는 사정을 알리고자 注谷의 漢陽趙氏 측에 보낸 편지
1821년 6월 15일에 海隱 姜必孝(1764∼1848)가 안부를 주고받고 상대측 『晩谷文集』 간행을 축하하며, 자신이 겪은 喪制 소식을 전함과 아울러 상대측에 가지 못하는 사정을 알리고자 注谷의 漢陽趙氏 측에 보낸 편지이다.
처음, 國喪에 대해 이는 온 나라 臣民들의 슬픔이라고 서두를 떼었다. 지난 달 轉遞 인편을 통해서 상대의 편지를 받아 위로되었다고 하고, 이어서 상대, 상대의 아들, 洞中의 순서로 안부를 물었다. 또한 상대측에서 『만곡집』을 간행한 것에 대해 축하하였다. 자신의 경우는 그럭저럭 지내고는 있지만, 4월 말 경 돌림병 때문에 聖虎 아우의 상을 당했고, 그의 장례를 이달 17일로 계획하였음을 알렸다. 자신은 뜻밖에 당한 이 일 때문에 온갖 마음이 재처럼 사그라져서 집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하였다. 그래서 以凝 형님 등과 유람 갈 기약도 지키지 못했고, 상대측 집안 행사에도 참여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래서 상대측에 가 보는 일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하였다. 예전에 상대측 사람들과 경주 玉山으로 유람 갔던 일을 늘 그리워하고 있다는 말도 전했다.
추록에는 從弟의 장례 기일을 급하게 정하게 되어 상대측에게 미리 알리지 못했다고 하면서, 이미 장사를 치른 이후지만 그래도 글 한 편 지어 고인을 영결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또한 이응 형이 상대 고을에 있다고 들어서 그에게 보낼 답장도 함께 부친다고 하였다.
본문에서 처음 언급된 '國喪'은 正祖의 正妃이자 純祖의 王大妃인 孝懿王后 金氏(1754~1821)의 상을 말한다.
'晩谷'은 趙述道(1729~1803)의 호이며, 玉川 趙德鄰의 손자이다. 『晩谷文集』은 조술도의 조카 趙居信(1749~1826)이 그의 유문을 수습하고 立齋 鄭宗魯의 교감을 거처 1821년에 간행되었다. 총 9책 17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종로의 序文 및 定齋 柳致明, 晦屛 申體仁, 조거신 등이 쓴 제문이 실려 있다. 본문에서 『만곡문집』 간행을 축하하는 내용을 통해 이 편지의 수취인은 조거신 또는 그와 비슷한 항렬의 인물이거나 바로 아랫대의 인물로 추정할 수 있다.
본문에 등장하는 '以凝 尊兄'은 金羲壽(1760~1848)로 본관은 義城, 자는 以凝, 호는 東園이다. 副護軍을 지낸 浪皤 金鎭林(1802~1886)의 生父이다. 1809년 增廣試 생원에 입격했다. 류치명이 묘지명을 지었다.
이 편지의 발급인인 姜必孝는 본관은 晉州, 자는 仲順, 호는 海隱이며, 초명은 世煥이다. 아버지는 植, 어머니는 眞城李氏 重延의 딸이다. 姜酇의 후손으로 尹光紹의 문인이다. 봉화 法田 출신이다. 1803년 遺逸로 천거되어 順陵參奉을 지낸 이후 造紙署別提, 敦寧府都正 등을 역임하였다. 저작으로 『古聖賢考經錄』, 『近思續錄』, 『素溪會話錄』, 『夕惕錄』, 『四遊錄』, 『經書考異』 등이 있고, 문집인 『海隱遺稿』가 있다. 편지 본문에서 자신을 '功服弟'라고 표현한 것은 종제의 상을 당했기 때문에 大功服의 상복을 입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1차 작성자 : 김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