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1년 4월 18일 鄭象晉(1770~1848)이 遺集과 先集의 진행 상황을 상대방에게 전하는 편지
1821년 4월 18일 鄭象晉(1770~1848)이 遺集과 先集의 진행 상황을 상대방에게 전하는 편지이다.
정상진은 지난겨울 상대방의 행차에 잠시 만나고, 그 후 자신이 상대방의 집에 갔을 때 상대방이 집에 없어 만나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상대방의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서운하고 허전한 마음이 해가 바뀌어서 그치지 않는다고 하였다. 지난 인편에 안부편지를 받았는데 자신은 인편과 심부름꾼을 보낼 길이 없어 답장이 늦어졌다고 전하였다. 吳兄 편으로 상대방과 그의 아들이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자신은 지난 11월 達城으로 가 崔娣를 만났는데 추위를 무릅쓴 행차라 묵은 병이 더해져 오랫동안 신음 하고 있다고 하였다. 또 막내아우의 寃祥이 지나갔는데 눈길이 닿는 곳마다 슬프고 괴롭다고 하였다.
유집은 수습하고 있지만 탈초를 하고 책으로 완성하는 것은 아직 시일을 기약할 수 없고, 전에 從遊한 제현들은 역질로 함께 모일 형편이 아니어서 근심되고 두렵다고 하였다. 근래에는 선대의 문집을 속간하는 일 때문에 골몰함을 면하지 못할 것인데 物力이 빈약하여 뜻한 대로 성취하는 것도 어렵다고 하였다. 상대방께서 보내주신 만사의 뜻이 深遠하여 슬픔과 감동이 깊다고 전하며 편지를 마쳤다.
편지에서 말한 유집은 鄭宗魯(1738~1816)의 『立齋先生文集』 이다. 정상진과 鄭象觀 등은 아버지의 사후 문집 간행을 염두에 두고 유문을 모았다. 이들은 1826년 정종로를 이장한 후 문집 간행에 매달린 것으로 보인다. 修溪 李升培, 魯菴 鄭必奎, 兢菴 姜世揆와 조카 鄭象履가 1829년 北長寺에 모여 분담하고 교감을 하였다. 1835년 24책 48권으로 간행하였다. 선집은 文莊公 鄭經世(1563~1633)의 문집 간행이다. 制庵 鄭象履의 행장에 1821년에 연보와 부록을 포함하여 8권 4책으로 문장공의 『愚伏集』 별집을 간행한 사실이 기술되어 있는데, 이는 정종로의 유지를 따른 것이라고 한다.
발신자는 정상진으로 본관은 晉陽이고 자는 日晉, 호는 石坡와 漁樵齋이다. 아버지는 정종로이다. 정경세의 7대손이다. 庭訓을 입어 經史子集에 정통하다. 과거에 뜻이 없어 학문에만 전념을 하였다. 先考의 유집을 정리하여 보존하였다. 학문이 높이 평가되어 隱逸로 천거되어 宣陵參奉을 제수 받았지만 부임하지 않았다.
1차 작성자 : 김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