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8년 4월 6일, 姜必孝가 영양 주곡의 한양조씨에게 경주의 옥산서원에서 공부한 것과 양동의 玉溪를 유람한 소감을 적어 보내는 편지
1818년 4월 6일 姜必孝(1764∼1848)가 영양 주곡의 한양조씨에게 경주의 옥산서원에서 공부한 것과 양동의 玉溪를 유람한 소감을 적어 보내는 편지이다.
편지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경주 가는 길 위에서의 아쉬운 이별은 지금까지 꿈에서도 아련하다고 했다. 곧 이 친구를 만나 형님께서는 그 사이 잘 도착하시고 고요한 가운데 체리는 신의 보호를 받음을 알게 되어 구구한 마음에 위로가 된다고 했다.
그날 저물어 玉山書院에 이르니, 양동의 여러 어른들이 이미 먼저 도착했다고 했다. 밤새도록 가르침을 받고 또 머물며 成 경산 현감을 기다려, 溪亭에서 태극을 강론했다고 했다. 밤에는 求仁堂에서 玉山講議 및 仁說 등의 책을 강론했는데, 이곳에서 이 책으로 강론한 것은 한결 같이 사리에 맞았다고 했다. 이어 양동에 도착하여 이틀 머물며 여러 군자와 함께 玉溪를 유람을 했는데, 모인 자는 무릇 여섯 개 고을의 31명이라고 했다. 있는 곳이 곧 인해를 이루었고, 사람의 빼어남이 형승의 빼어남보다 나은 듯 하다고 했다.
한스러운 것은 奎雄과 함께 서로 앞서거니 뒤서기니 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遯洞에 잘 도착하여 우리 벗이 돌 위에 손으로 쓴 글자를 보니,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이 열리고 눈을 밝게 하여 그 글자를 놔두고 떠날 수 없었다고 했다.
돌아온 이후 안부를 전하고, 다시 題名錄과 小序를 酬唱한 여러 작품과 함께 거듭 전하여 얼굴을 대신하는 자료로 갖추려고 했는데, 인편이 재촉하여 겨를이 없었다고 했다. 이 벗의 행차에 의지하여 대략 안부를 전하고 이만 줄이니 형께서는 살펴봐 달라고 했다.
持强 종숙씨의 상 가운데의 건강은 근래 지탱하고 있고, 士克氏의 자부가 되는 그의 종매씨는 천연두를 순조롭게 겪어, 이 집안이 모두 경사스러운 일 뿐이라는 내용을 추록했다.
발급자 강필효의 자는 仲順, 호는 海隱·法隱, 본관은 진주이다. 봉화 法田 출신으로 1803년 遺逸로 천거되어 순릉 참봉에 제수되었으며, 이후 造紙署 別提, 충청도 도사, 돈녕부 도정 등을 역임했다. 사서와 성리학을 깊이 연구했으며, 『古聖賢考經錄』, 『近思續錄』, 『四遊錄』, 『經書考異』 등을 저술했다.
1차 작성자 : 김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