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5년 10월 20일에 김굉(金㙆)이 주곡(注谷) 형에게 선조의 원고를 부탁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보낸 편지
1815년 10월 20일에 김굉(金㙆)이 주곡(注谷) 형에게 선조의 원고를 부탁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뜻밖에 당신이 찾아오고 또한 편지도 보내주시니 감사하여 고질병이 몸에서 떨어져 나갈 것 같다고 하고 있다. 이어서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병으로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상대방이 준 문고 교정에 대한 일을 언급하고 있다. 자기는 견해가 부족하여 '어(魚)'자와 '노(魯)'자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 이지만 평소에 당신이 사모하고 저를 아끼는 마음 때문에 원고를 받아 놓았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병이 깊어서 살펴보지 못하고 묶어서 시렁위에 올려놓았다가 잠깐 살펴보았으나 선조의 글이 망망대해와 같이 넓고 깊어서 자신이 손을 댈 수 없다고 하며 겸손한 말을 하고 있다. 이미 교정한 것이 정밀하여 자신이 손 댈 수 없지만 당신의 말에 따라 원고를 살피고자 하는데 마침 이신가(李眘可)가 빌려가서 보지 못했으니 당신께서 관련 글을 찾아서 보내줄 것을 부탁하고 있다. 여기서 이신가는 이병원의 호이다. 1806년 조거신이 이병원의 아버지 이우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을 통해 풍양조씨와 한산이씨는 지속적으로 왕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추신에는 상대방이 보내준 음식은 매우 감사하지만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다고 하고 있다.
김굉(金㙆, 1739~1816)은 본관 의성(義城), 자는 자야(子野), 호는 구와(龜窩)이다. 아버지는 김광헌(金光憲)이고 이상정(李象靖)의 문인이다. 1777년 증광시 병과로 문과에 급제하였고 단양군수, 예조참판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구와집(龜窩集)』이 있다. 발신자는 시기적으로 보았을 때 조거신(趙居信, 1749~1826)으로 추측된다. 그는 본관 한양(漢陽), 자는 충언(忠彦), 호는 매오(梅塢)이다. 아버지는 조진도(趙進道)이고 후에 조준도(趙尊道)의 양자가 된다. 정술도(鄭述道)의 문인으로 향촌에서 은거하며 학문에 힘썼다.
이 편지는 조상의 문집을 간행하는 과정을 일부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문집을 출간할 때 지역의 유명 인사들에게 교감이나 글을 부탁하여 가문의 권위를 높였으며 이 과정에서 학연도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 편지에 등장하는 한양조씨, 의성김씨, 한산이씨는 학연과 혈연으로 얽혀 있으며 한 가문에서 일이 발생할 때 서로를 도우며 향촌의 주도권을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1차 작성자 : 김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