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3년 2월 15일에 李秉遠이 돌아가신 晩谷 할아버지의 초본을 읽어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고, 叔祖가 남긴 글에 대한 교정 작업과 관련하여 영양 주곡의 한양조씨에게 보내는 편지
1813년 2월 15일에 李秉遠(1774~1840)이 돌아가신 晩谷 할아버지의 초본을 읽어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고, 叔祖가 남긴 글에 대한 교정 작업과 관련하여 영양 주곡의 한양조씨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먼저, 한 해가 다가고 새해의 봄도 반이나 지났는데, 막연히 만날 기약이 없으니 다만 바람을 쐬면서 서글퍼함이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갑자기 객지에서 당신의 아드님을 만났고 겸하여 한 폭의 긴 편지도 받아 친구의 수중으로부터 온 것을 알고는 멀리 있지만 마치 마주 대하며 이야기 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다만 병환이 아직 뿌리를 뽑지 못했음을 알았으니, 마음속으로 근심되고 염려스럽다고 하였다. 그러나 지난번에 전해들은 것에 비해서 조금 덜해진 것 같다고 하니, 조리를 잘 하셔서 병이 나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어서 자신의 어버이의 안부와 근황을 전하는데, 일전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나그네가 객사에 이르렀다가 이제 막 돌아가려 할 뿐이라고 하면서 당신에게 알릴만한 자신의 일상생활이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나서 돌아가신 만곡 할아버지의 문자는 이미 초본을 정했음을 알았고, 또한 인편을 통해서 초본을 읽어볼 기회가 있으면 매우 다행이겠다고 하였다. 다만 한번 교정을 거치라고 말씀하신 것은 곧 형께서는 어찌 그것을 말하면서 말씀을 아끼지 않느냐고 하였다. 이는 교정을 자신에게 부탁한 형에 대한 겸사의 표현인 듯하다.
끝부분에는 숙조가 남긴 글이 가까운 士友의 힘을 빌려서 바야흐로 인쇄하려고 하나 아직 교정도 다하지 못한 것을 한스럽게 여기고 있으니 어찌하겠냐고 하였다. 咸昌 김군은 과연 이에 정밀하니, 전날에 진실로 형을 위하여 한 마디 말을 붙여서 증세를 적은 한 종이를 얻어 오려 했는데, 얼마 있다가 김군이 갑자기 죽었다는 것을 들으니, 이제 소용없이 되어 한스럽다고 하였다.
추신으로 召羅 察訪의 상참은 슬픔을 견딜 수 없다고 하면서, 상참이 거듭되고 있으니 경악함이 간절하다고 하였다.
발급인 이병원은 자가 愼可, 호는 所庵, 본관은 韓山이다. 조부는 大山 李象靖(1711~1781)이고, 부친은 弘文館校理지낸 艮巖 李埦이며, 모친은 李範中의 딸이다. 형은 李秉運이다. 부인은 默軒 李萬運의 딸이다. 川沙 金宗德의 문하에서 수학하며, 사서와 성리학을 익혔다. 1801년 음직으로 穆陵 參奉, 義禁府 都事, 淸河 縣監, 比安 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所庵先生文集』이 있는데, 1904년에 증손 李贊燾가 편집하여 간행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