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3년 12월 4일 李秉遠(1774~1840)이 자신의 근황과 黨의 삭막함을 注谷에 보낸 편지
1813년 12월 4일 李秉遠(1774~1840)이 자신의 근황과 黨의 삭막함에 대해 注谷에 전하는 편지이다.
이병원은 남쪽에서 온 사람에게 상대방의 안부 소식을 연달아 받고 건강도 나아지고 공부도 잘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하였다. 이병원은 노인의 병이 많아 약을 달이고 죽을 쑤느라 쉬지 못한다고 하였다. 또 형인 李秉運(1766~1841)은 벼슬에 얽매여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자신은 공부에 힘써야 하나 게으른 습관과 잡된 일로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병원은 당에 지위와 명망, 재주와 슬기를 갖추고 歲寒의 기약으로 삼을 수 있는 자기 형 같은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하였다. 상대방에게 원대함을 도모하여 어진 은택을 떨치고자 한다면 못나고 졸렬한 자신을 상대방의 말광을 받들어 간직하여 따르게 해달라고 하였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논의 하는 것은 時月로써 기약할 수는 없지만 마음속에 있는 것을 쏟아 낼 수 있는 것은 편지뿐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서로 겸손하게 미루면서 마음속의 것을 다하지 않는다면 얼굴만 알고 지내는 사이일 뿐이라고 하였다. 이병원은 상대방 아들과 당질의 학문 성취를 물으며, 그는 당신의 가르침을 잘 받아 장래도 크게 볼만하다고 하였다. 추록으로 上舍兄의 시험에 합격한 것을 축하하며 德門이 적막하지 않은 것이 매우 기쁘다고 하였다.
발신자 이병원은 본관은 韓山, 자가 愼可, 호는 所庵이다. 조부는 大山 李象靖(1711~1781)이고, 아버지는 艮巖 李埦(1740~1789)이며 어머니는 李範中(1708~?)의 딸 이다. 川沙 金宗德(1724~1797)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01년 목릉참봉, 의금부도사, 청하현감, 비안현감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所庵先生文集』이 있다.
1차 작성자 : 김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