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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이영원(李永遠)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9+KSM-XF.1800.0000-20170630.03722570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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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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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이영원
작성시기 1800
형태사항 크기: 28.8 X 46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양 주곡 한양조씨 옥천종택 /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800년 이영원(李永遠) 서간(書簡)
1800년 2월 19일, 안동 소호리의 한산이씨 이영원(李永遠, 1774~1840)이 영양 주곡의 한양조씨에게 조덕린(玉川 趙德隣, 1658~1737)의 유집 편집과 관련된 의견을 담아 보내는 편지이다. 한산이씨가 조덕린의 문집 간행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으며, 한양조씨와 이영원이 만난 이후 유집 수정과 관련한 종숙 이우(俛庵 李㙖, 1739~1811)의 의견을 한양조씨에게 전하였다. 상대방이 시 한편을 내려주어, 이영원도 시를 지어 편지에 함께 부쳤다.
1차 작성자 : 박세욱

상세정보

1800년 2월 19일, 李永遠영양 주곡의 한양조씨에게 유집 편집과 관련된 의견을 담아 보내는 편지
1800년 2월 19일, 李永遠(1774~1840)이 영양 주곡의 한양조씨에게 유집 편집과 관련된 의견을 담아 보내는 편지이다.
추운 날 외진 골짜기에 遺卷을 안고 오시어 대소 숙질간에 조용한 시간을 나눌 수 있어 자세한 편집을 하는 도움을 얻었고, 또 상대방이 넉넉한 모습과 따뜻한 말을 내려 주시어 마음이 든든했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예전처럼 잡다한 일에 막혀 있으며, 遺集은 가르쳐 주신 뜻대로, 종숙 李㙖(1739~1811)에게 여쭈어보니 마지막에 다시 손을 대는 것이 미안하다고 하여, 그대로 필사를 시작했으니 正本을 만드는데 근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상대방이 지어준 시로 책 상자가 훤해졌다고 했다. 상대방의 내려주심을 헛되이 할 수 없으나 格律에 어두워 창졸간에 시 한편을 지어 보냈는데, 한번 웃을 거리도 되지 못할 것이니 불살라 달라고 했다. 상대방이 건강을 잘 지키길 바라는 내용으로 편지를 끝맺었다. 추록에는 상대방 손자의 뛰어난 재주와 아름다운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발급자 이영원의 字는 愼可, 號는 所庵, 본관은 한산이다. 이영원은 초명이며, 李秉遠으로 개명했다. 안동소호에 살았다. 李象靖(1711~1781)의 손자로, 金宗德의 문인이다. 1801년 진사시에 합격하여 목릉 참봉, 의금부 도사, 비안 현감 등을 지냈다.
수급자는 미상이나, 한양조씨 옥천종택으로 보내는 것이다. 옥천종택은 趙德隣(1658~1737)의 고택이다. 조덕린의 자는 宅仁, 호는 玉川, 본관은 한양이다. 1677년 사마시에 합격했고, 1691년 문과 급제한 이후 교리·사간 등을 역임했고, 1725弼善으로 당쟁의 폐해를 상소한 문장 속에 노론의 득세를 비난한 내용이 당쟁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 하여 함경도 鐘城에 유배되었다. 1727년 정미환국으로 소론이 집권하자 풀려나 부응교에 등용된 이후 동부승지까지 올랐으나 1736년 서원의 濫設을 반대하는 상소를 하였다가 노론의 탄핵으로 이듬해 제주에 귀양가던 도중 강진에서 죽었다.
조덕린의 신원을 위한 후손들의 노력으로 1788년 신원이 이루어졌다. 1797년 당시 경기 남인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채제공에게 묘갈명을 받았으나, 1799채제공의 죽음, 1800년 정조의 죽음으로 남인계가 위축되었고, 1802조덕린의 관직이 다시 삭탈되자 후손들의 문집 간행 노력은 좌절되었다. 조덕린의 문집은 우여곡절 끝에 1898년 간행되었다. 이 편지를 통해 1800년 전후 조덕린의 후손들이 문집 간행을 위해 한산이씨에게 부탁한 정황을 알 수 있다.
1차 작성자 : 박세욱

이미지

원문 텍스트

1800년 이영원(李永遠) 서간(書簡)

寒天絶峽。抱持遺卷。得以從容於
大小阮之間。旣蒙細加編騭。又
賜之假色溫語。載之而南。腹猶果然。新春已
失弱半。伏未審
君子履端。豈弟增休否。輪溯句句。不任鄙忱。
侍生 歸伏弊廬。依舊冗聵。向來一曝。已覺烏
頭力盡柰何。遺集歸以
敎意。仰關於從叔。則終以更犯手勢爲未安已。
依此始寫。可以據爲正本矣。
下贈別章。奉而南歸。光耀塵篋。不敢虛辱
尊者之賜。而素昧格律。倉卒杜撰。殊不堪備
崇鑑之一笑耳。伏望卽
賜丙丁之如何。餘祝
靜履萬重。不備伏惟
下察 謹再拜。上候書。
庚申二月十九日。侍生 李永遠 拜拜。

小同一向才秀否。丰儀令人不敢忘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