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8년 3월 14일에 金熙稷이 무신년에 종군한 장사들의 창의문적을 찾아내어 한 통의 사실로 만들어달라고 부탁을 하기 위해 외숙부 趙進道에게 보내는 편지
1788년 3월 14일에 金熙稷(1742~1797)이 무신년에 종군한 장사들의 창의문적을 찾아내어 한 통의 사실로 만들어달라고 부탁을 하기 위해 외숙부 趙進道(1724~1788)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먼저, 어제 德丘로 행차할 때에는 만나 뵙지 못하고 길이 어긋났으니, 제 마음에 응어리가 져서 지금까지도 한이 된다고 하면서 곧 요사이 고요히 생활하시는 가운데의 체후가 어떠하신지 몰라서 지극히 우러러 그립다고 하였다. 그런 뒤에 관에서 내린 첩에서 무신년에 종군한 장사들의 창의 순절을 찾아서 錄啓하라는 뜻이 있었다고 하면서 대개 비변사의 關文에 의거하여 거행하겠으나 일의 기틀이 매우 급하다고 하였다. 그곳에서부터 창의문적을 찾아내어 한 통의 사실로 만들어달라고 부탁을 하면서 星求를 달려 보내 알린다고 하였다.
이어서, 宦帖은 마땅히 당신들한테도 전해져 도착했을 것 같으나 아마도 혹 늦어질 염려가 있을까봐 그 때문에 여기에서 바로 통지하고, 난리의 기록에 실린 바의 여러 건을 살펴서 또한 베껴 올리니, 또한 혹 빠뜨릴 염려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편지를 보내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한편 또 이 보고서에서 글을 쓰는 것은 다른 공문과는 본래 다른 것이니, 전후의 일을 어렵게 인용할 필요는 없다고 하였다. 다만 당년의 사적만을 기록한 연후에야 일의 이치가 마땅함을 얻으니,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물어보면서 편지를 마무리하였다.
발급인 김희직의 자는 公叔, 호 豹林이고, 본관은 義城이다. 金宇宏(1524~1590)의 후손이며, 趙善常의 외손이다. 奉化 海底에 살았다. 1777년 문과에 급제하여 弘文館修撰을 지냈다. 문집이 전한다. 한편 수취인 조진도는 자가 聖輿, 호는 磨巖, 본관은 漢陽이다. 조부는 趙德鄰(1658~1737)이고, 趙運道의 동생이다. 英陽에 살았다. 1759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조덕린의 손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합격이 취소되었다가 1788년 조부의 복관과 함께 다시 급제되었다.
1차 작성자 : 김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