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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8년 김희직(金熙稷) 서간(書簡) 이미지+텍스트 본문 확대 본문 축소

KSAC+K09+KSM-XF.1788.4792-20170630.03722570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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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기본정보 리스트
분류 형식분류: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내용분류: 개인-생활-서간
작성주체 김희직, 조진도
작성지역 경상북도 봉화군
작성시기 1788
형태사항 크기: 35.1 X 40.2
장정: 낱장
수량: 1
재질: 종이
표기문자: 한자
소장정보 원소장처: 영양 주곡 한양조씨 옥천종택 /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문중소개
현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안내정보

1788년 김희직(金熙稷) 서간(書簡)
1788년 3월 14일에 김희직이 외숙부 조진도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그는 관에서 내린 첩에서 무신년에 종군한 장사들의 창의 순절을 찾아서 녹계하라는 뜻이 있었다고 하면서 대개 비변사의 관문에 의거하여 거행하겠으나 일의 기틀이 매우 급하다고 하였다. 그곳에서부터 창의문적을 찾아내어 한 통의 사실로 만들어달라고 부탁을 하면서 성구를 달려 보내 알린다고 하였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상세정보

1788년 3월 14일에 金熙稷이 무신년에 종군한 장사들의 창의문적을 찾아내어 한 통의 사실로 만들어달라고 부탁을 하기 위해 외숙부 趙進道에게 보내는 편지
1788년 3월 14일에 金熙稷(1742~1797)이 무신년에 종군한 장사들의 창의문적을 찾아내어 한 통의 사실로 만들어달라고 부탁을 하기 위해 외숙부 趙進道(1724~1788)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먼저, 어제 德丘로 행차할 때에는 만나 뵙지 못하고 길이 어긋났으니, 제 마음에 응어리가 져서 지금까지도 한이 된다고 하면서 곧 요사이 고요히 생활하시는 가운데의 체후가 어떠하신지 몰라서 지극히 우러러 그립다고 하였다. 그런 뒤에 관에서 내린 첩에서 무신년에 종군한 장사들의 창의 순절을 찾아서 錄啓하라는 뜻이 있었다고 하면서 대개 비변사의 關文에 의거하여 거행하겠으나 일의 기틀이 매우 급하다고 하였다. 그곳에서부터 창의문적을 찾아내어 한 통의 사실로 만들어달라고 부탁을 하면서 星求를 달려 보내 알린다고 하였다.
이어서, 宦帖은 마땅히 당신들한테도 전해져 도착했을 것 같으나 아마도 혹 늦어질 염려가 있을까봐 그 때문에 여기에서 바로 통지하고, 난리의 기록에 실린 바의 여러 건을 살펴서 또한 베껴 올리니, 또한 혹 빠뜨릴 염려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편지를 보내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한편 또 이 보고서에서 글을 쓰는 것은 다른 공문과는 본래 다른 것이니, 전후의 일을 어렵게 인용할 필요는 없다고 하였다. 다만 당년의 사적만을 기록한 연후에야 일의 이치가 마땅함을 얻으니,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물어보면서 편지를 마무리하였다.
발급인 김희직의 자는 公叔, 호 豹林이고, 본관은 義城이다. 金宇宏(1524~1590)의 후손이며, 趙善常의 외손이다. 奉化 海底에 살았다. 1777년 문과에 급제하여 弘文館修撰을 지냈다. 문집이 전한다. 한편 수취인 조진도는 자가 聖輿, 호는 磨巖, 본관은 漢陽이다. 조부는 趙德鄰(1658~1737)이고, 趙運道의 동생이다. 英陽에 살았다. 1759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조덕린의 손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합격이 취소되었다가 1788년 조부의 복관과 함께 다시 급제되었다.
1차 작성자 : 김선주

이미지

원문 텍스트

1788년 김희직(金熙稷) 서간(書簡)

磨巖 靜几下 執事。
水源表從侄候書。謹封。
日昨德丘行旆時。未得奉拜路左。下懷鬱
結。迨以爲恨也。卽未審辰下。
靜中體候若何。區區慕仰。俄見官下帖。
戊申從軍將士。倡義殉節。搜訪錄
啓之意。蓋據備局關擧行。而事機甚
急。幸望自其處搜出倡義文蹟。以爲
一通事實。星求馳報。俾無不及
之患。如何。宦帖似當輪到貴中。而恐
或有遲緩之慮。故自此直通。而勘
亂錄。所載數件。亦爲謄上。亦恐有
遣漏之慮故也。且伏念此報措辭。則與他
自異。不必難引。前後事。只記當年事
蹟。然後事理得當。未知如何。餘忙甚
不備。伏惟
下察。謹拜候上書。
戊申三月十四日。表從侄 金熙稷 拜手。